72일. 과일의 힘을 빌려 4종 세트 완성

by 속삭이는 물결

오늘은 힘을 내려고 바나나와 천도복숭아 한 알을 먹고 출발했다. 아주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똑같이 힘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가는 길을 단축시키는 방법을 하나 깨달았다. 유독 횡단보도 한 곳에서의 신호가 3분 정도로 긴 구간이 있는데, 사거리를 둘러싼 나머지 횡단보도 두 개가 교차로 초록 신호가 끝나야만 직진 방향의 횡단보도에 초록 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늘 이곳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평행한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꿈에서 본 것 같기도 한.. 그 말은 3분을 기다리는 대신 수직 방향의 횡단보도 2곳을 차례대로 건너 ㄷ자로 돌아가면 더 빠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요즘 더워지면서 몸도 느려져서 지각을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었다!


오늘 선생님은 수영복을 입지 않으셨고, 호루라기로 준비 체조를 이끌고 계셨다. 체조를 마치고 인사를 하신 선생님은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나며 매우 당황해하셨다. 아기 선생님에겐 벅찬 인원 수임이 분명하다. 어른 선생님에게도 벅찬 것을. 선생님은 초보 분들의 레벨을 대략 파악하곤 모두에게 자유형 발차기 3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오늘은 유독 물이 더 뿌얬다. 전에는 이렇게 물이 더러운 걸 더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게 사람들이 덜 씻고 와서 비눗물을 풀에 풀기 때문인 걸까 싶다. 그래서 고개를 담그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 선생님은 헤드업 연습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에 헤드업으로 발차기 연습을 했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은 나가는 속도가 별로다. 평소보다 느리게 나간다. 헤드업으로 해서 그런가, 일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그럴듯한 이유가 생각나네.


다 돌고 나선 반 바퀴 조깅을 하고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영 바빠 보이셔서 할머니께서 총대를 메었다. 선생님 못 오실 것 같으니 그냥 자유형 돌자구! 젊은 사람들 먼저 어여 가! 아놔 근데 자유형도 느리다. 아주 유유자적하게 간다. 내 마음은 빠른데. 심장도 꽤 긴장된 느낌이다. 어딘가 근육이 단축돼 있는 느낌. 며칠 전 잠을 못 잤을 때 그랬던 것처럼 목 앞부분이 결리는 것처럼 불편해온다. 어찌저찌 쉬지 않고 자유형 세 바퀴를 채웠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시작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열심히 다가 오셔선 반 바퀴 조깅을 명령하셨다. 미리 무슨 연습을 할지 알려달라고 요청드렸다. 선생님은 배영을 할 건데 다 같이 모이면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지만, 선생님이 워낙 바쁘시니 우리가 뒷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도 각자의 연습 타이밍을 더 챙겨서 보시는 듯했다. 아무튼 모두가 모이자 설명을 시작하셨다.


배영 타임. 지난번처럼 차렷 자세에서 출발해 한 팔씩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연습 방법이다. 정확한 동작 수행을 위해 하는 거라고 하셨다. 성질 급한 할머니가 턱의 각도를 물어보셨다. 선생님은 턱은 아래로 당겨야 한다고 하시며, 그래야 자세도 안정적이고 코에 물도 덜 들어온다고 부연 설명하셨다. 배영을 하는 내내 엉덩이와 햄스트링에 열이 올랐다. 한 팔씩 천천히 하면서도 다리가 가라앉지 않으려면 다리가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나 보다.


또다시 세 바퀴를 채우고 돌아왔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께서 또 우리끼리 평영을 출발하자고 하셨다. 나는 배영을 느리게 연습해서 이번엔 빠르게 하는 걸로 한 번 더 시키실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우신 듯했지만 다행히 선생님께서 금방 돌아오셨다. 내 예상대로 이번에는 팔을 빠르게 쭉쭉 뻗으며 배영 두 바퀴다. “배영에도 음파가 있는 거 아시나요? 모르시는 분?” 나는 이미 설명만 여러 번 들었지만 선생님이 하는 방식을 흉내조차 내질 못해서 입을 다물었다. 여하튼 출발이다. 팔도 쭉 뻗고 더 빠르게, 다리도 더 힘차게 하려고 했으나, 옆 사람이 만드는 물보라가 콧속으로 계속 들어와 아주 곤욕이었다. 그래, 발차기가 약한 탓이니 더 매진해야 한다.


이번에는 평영 세 바퀴다. 선생님은 지상에서 시범을 보며 평영의 팔다리 타이밍을 설명하셨다. 윗배 앞에서 합장을 하고 두 손을 약간 벌려서 고개가 들어갈 공간을 만든 채,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고개를 팔 아래로 푹 숙이기. 팔을 앞으로 쭉 뻗을 때 다리도 같이 차기.


어제처럼 그제처럼 여전히 평영이 정체된 느낌이다. w자로 접은 직후에 잠시 기다렸다가 차면 발차기의 세기는 좀 더 강해지지만 고관절에 살짝 충격이 온다. 발목으로 물을 휘감아 들어오는 느낌도 사라졌고. 연습을 하다가 지난주에 들었던 가슴을 쫙 펴라는 피드백이 생각나 상체 모양새에 집중해 보기도 했다. 나도 슝 하고 나가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 세 바퀴는 금방 채우고 돌아왔다.


선생님은 나에게 “평영 많이 늘었네요.”하고 또 칭찬을 해주셨다. 아싸! 그러나 나는 평영을 하면 할수록 잘 안 되는 느낌이라고, 이상하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많이 늘었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발목으로 물살을 가져오는 느낌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살짝 동문서답으로, 발목을 꺾었다가 발등을 펴면서 들어올 때 추진력을 일으키는 게 원리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잘 안 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원래 평영이 어렵고 힘들다며, 본인도 평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뜬금 고백을 하셨다. 오오… 진심으로 자신 없는 표정을 하셔서, 왠지 힘이 났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또, 평영은 관절에도 좋지 않고 해서 선수들도 다 기피하는 영법이라고 하셨다. 무릎을 돌리는 방식 때문에 그런 거라고. 그래서 무릎이 아프지 않으려면 무릎을 돌리는 방식 대신 두 다리를 A자로 벌린 다음 모아서 차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설명도 약간 부질없다는 느낌으로 하셔서 정말 평영을 싫어하시나 보다, 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접영 킥 배웠냐고 물으셨고,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화목에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 어제 나만 다른 반에서 배웠다고 말하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선생님은 접영을 연습하면서 평영 팔을 같이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계를 보셨는지 “일단 반 바퀴 조깅하시고 마무리 체조 준비하실게요.”라며 자리를 뜨셨다. 시계를 보니 딱 1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평영, 접영 동기 분께 “접영 할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수업 시간이 끝이 났네요.”라며 웃었다.


걷고 왔는데 아직 마무리 체조가 시작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벽을 붙잡고 어제 배운 접영 킥을 연습해 보았다. 오, 뭔가 되는 느낌이다. 세네 번을 차고 나니 선생님의 구령이 들렸다. 일어나 마무리 체조를 마치고는 킥판을 붙잡고 접영 킥 연습을 더 해봤다. 오, 어제보다 더 잘 된다! 앞으로 나가진다! 그렇게 대충 한 바퀴를 돌고 와선 킥판을 가져다 놓고 평영으로 레인 끝까지 헤엄쳐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나 홀로 접영 연습까지 하고 나니 뭔가 4종 세트를 다 마친 것 같은 뿌듯함!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 바나나와 복숭아의 효과가 영 없었던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어떻게 하면 여름날 기력을 얻을 수 있을까? 앞날에 대한 걱정도 한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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