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 최악의 다음 정거장은 희망입니다

by 속삭이는 물결

어제저녁부터 무지 피곤하고 기력이 없었다. 아침엔 일부러 바나나와 우유를 챙겨 먹었다. 힘을 내기 위하여.


자유형, 배영, 평영 발차기 1, 1, 2씩. 평영 발차기는 꼭 접촉 사고가 난다. 그럴 때마다 죄송한데 초보들끼리는 눈치껏 피할 수가 없다. 자유형 2, 배영 1, 평영 2. 자유형은 이제 왼팔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게 느껴졌다. 배영은 지루했고, 평영은 팔을 더 빠르게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까지 했을 때 29분이었다.


접영 킥 시작. 상체에도 웨이브를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에 집중했다. 어제 하루 종일 접영은 망했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접영 강습 영상을 하루 종일 찾아봤다. 어떤 영상에서 가슴을 앞으로 밀어내는 느낌, 파동을 깊지 않게 만들어내는 느낌을 강조했는데 그게 내 뇌리에 꽂혔다.


평영 팔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접영 킥을 하면서 상체가 꿀렁이며 앞으로 나가는 느낌은 제법 났다. 그렇게 10분쯤 연습을 했다. 하면 할수록 체력이 달려서인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킥판 아래를 잡고 접영 킥을 연습하라고 하셨다. 분명 내가 지금까지 연습하는 걸 보셨을 텐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킥판을 잡으라고 하시는 거지?


한 번 하고 멈췄다. 선생님은 킥판을 잡을 땐 상체를 흔들지 말고 허리 아래까지만 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또 두세 바퀴를 돌았다. 허리 아래만 써야 된다고 하니 그렇게 쓰였다. 허리 아래 웨이브를 주는 느낌이 분명하게 났다. 수업 종료 1분 전, 이제 누가 먼저 출발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양보 중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킥판을 놓고 두 손을 뻗고 머리 위에서 포갠 뒤에 접영 킥을 나가 보라고 하셨다. 다만, 상체가 흔들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허리 아래만 쓰라고 하셨다. 물론 내 상체가 많이 흔들리는 건 맞는데, 가슴을 눌러야 한다고 하셔서 더 크게 움직였던 거다. 살짝 억울한 감이 있었지만 이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또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물아래에서 킥을 차야 한다는 거겠지?


두 세트를 하고 일어났다. 이제 허리를 제법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럼 평영 팔은 안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평영 팔을 하면 자세가 망가지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숨 쉬고 싶으면 자유형 팔을 하라고 말이다. 나는 그게 될까 싶었다. 두 다리를 같이 움직이다가 한 팔만 돌려서 숨을 쉰다는 건, 균형 잡기 최고 난이도에 해당하는 동작이었다. 예상보단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 팔 접영을 하게 된 걸까? (아님)


신기했다. 분명 어제는 접영을 하면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감과 실력이 바닥을 치고 난 다음날 갑자기 잘 되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닐까. 최악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다시 희망이 시작되는 것. 물론 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순간적인 좌절감에 휩싸여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무리 체조를 하는 동안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내가 이것저것 연습을 하는 동안 콧속에 물이 가득 들어왔다가 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락스 냄새가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수메는 오늘따라 수영장 물이 너무 더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락스 냄새도 전혀 나질 않고 수질 관리에 너무 소홀하다고 말이다. 사람이 많아져서 더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고도 했다. 코를 찌르는 불쾌한 곰팡이 냄새는 샤워실에서도 났다. 이렇게까지 더러울 일인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게 차라리 잘된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8월이면 더 더워질 텐데 어떻게 이걸 감당하겠는가.


참,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해서인지 수영장 인원이 약간 줄었다. 이제 다시 방역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지긋지긋하다. 수영장에서 감염되면 정말 억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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