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고했다'
등 두드려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퇴근하는 길,
옆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내 어깨 위로 뚝, 떨궈진다.
그러고 보니, 모두에게 힘든 하루였구나.
고작 몇 정거장 거리 정도의 짧은 졸음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잊는 사람에게
내 어깨 정도는 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여행의 기억 하나가 도착했다.
인도의 국경지대인 Bihar주.
버스는 국경을 출발하여 주도 파트나_Patna로 향했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의 풍경은 거칠다.
마른 잎으로 지붕을 엮고 벽을 진흙으로 이겨 바른 집 몇 채가 마을의 전부,
문이랄 것도 없이 휑하게 속을 드러낸 집은 그들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집 앞에 앉아 저대로 하루를 보낼 것 같은 여인들 앞에서
아이들은 진흙과 소통이 섞인 땅을 구르며 뛰어놀았다.
버스가 덜컹댈 때마다 흙탕물과 함께
가축의 피를 빠는 쇠파리들이 밀려 들어와서 나는 창을 닫았다.
어째 지금의 내 마음이 딱 비포장도로다.
울퉁불퉁 엉망진창 만신창이.
(밑에 계속)
네팔 국경. 아이들은 흙과 나무를 만지며 하루를 놀았다.
무례했던 나의 고백이 떠올라
네팔을 떠나온 내내 마음은 뺨이라도 맞은 듯 얼얼하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서 또 하나의 기술을 배운 것 같다.
감정의 거리두기.
여행 중에는 만나는 사람 수만큼 감정의 도착과 떠남도 수없이 반복된다.
관계는 대체로 가벼운 편이지만 여기에는 서로의 여행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
여행이라는 게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는 일종의 자발적 고립이라서
누군가 자신의 여행 속으로 들어와 감정적으로 엮이게 되면 딱 부담스러워진다.
하지만 이 '쿨'한 관계에 익숙지 않던 나는
내가 힘들다며 함부로 위로를 강요하고, 내가 쓸쓸하다며 함부로 마음을 갈구했다.
마치 나의 80리터짜리 배낭을 다른 이에게 던져주는 것과 무엇이 달랐을까.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내 마음과 같을 것이란 착각 때문에
서로의 감정은 다치고, 서먹하게 관계는 닫혀버렸다.
흐르는 풍경을 응시하며 네팔의 일을 생각하던 어느 즈음,
무언가 어깨를 눌러 옆을 보니 더벅머리 여행자가 머리를 떨군 채 졸고 있다.
그가 버스에 올라타고 내 옆에 앉았을 때 가볍게 인사를 나누거나
여행 정보를 공유하며 대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감정을 섞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가 조금 더 잘 수 있게 그냥 어깨 정도만 빌려주기로 한다.
진흙이 엉켜 붙은 채 슬리퍼 끝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보니
어쩐지 그의 여행도 나와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여행마다 사연이 있고 처지가 있다. 서로의 여행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