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청춘이 좋다. 나이 들면 여행도 못 가요"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젊어서 할 수 있는 것과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특히 여행은 젊음의 특권이라며
빚을 내서라도 가야 한다고 이사님은 얘기했다.
이국의 땅에 내리는 비를 보며 감수성에 젖어보거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울어보는 경험 같은 건
나이 들어 떠나는 여행에서는 해보기 힘들다고 했다.
감성이 말라버려서 좋은 것을 봐도 그저 그래.
그 말에 나는 퇴사할 용기를 얻었던 걸까.
사랑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이십 대만큼 적절한 때도 없지 싶었다.
헤어짐 후에 내 생활은 망가지고 있었다.
이십 대의 감정은 쉽게 요동쳐서
일하는 중에도, 일을 마친 후에도 틈만 나면 울었다.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냥, 고로 내 인생이 곧 거덜 날 것처럼 말이다.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던 말은 입 안의 마른오징어처럼
씹어도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안주가 되어
날마다 술을 마시게 만들었다.
그즈음, 어느 영화의 대사가 꽂혔다.
"세상 끝의 땅, 핀 델 문도_Fin del mundo의 등대에
슬픔을 묻어놓으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린대."
청승도 기꺼이 용서되던 나이였다.
저기가 내가 구원받을 곳이구나, 싶기까지 했다.
까맣게 속을 태우고 하얗게 밤을 지새웠던 고단한 기억들을 그곳에 두고 오자.
나는 진심으로 나의 안녕을 빌며
배낭을 둘러멨다.
나는 반성한다. 마추픽추에 가면 엽서라도 한 장 보내달라던 이사님의 부탁을 개무시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