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Intro

by 엔리께



"넌 참 흐리멍덩한 색의 물 같구나"


나의 여행은 A의 말에서 시작된다.

A는 종종 물에 덧댄 비유로 나를 표현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머쓱해할 뿐

우유부단한 내 취향을 대수롭지 않아 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인생영화 다섯 편을 꼽는다면?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 특히 추천할 넘버는?

같이 취향을 묻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할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으로

나는 그저 그렇게 지내왔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A가 남긴

"2년을 만났어도 난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란 말을 듣고

취향의 부재는 단순히 메뉴 고르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형태까지 결정짓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3차례에 걸쳐 2년 8개월간 세상을 다녔다.

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1년,

서유럽, 북아프리카, 중남미를 1년 6개월,

동남아를 2개월 다녔다.

그래서 찾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딱 떨어진 값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여행의 기억들이 내 일상의 끝에 도착하고

그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파먹으며 지내다 보니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

어떤 태도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조금씩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보니 A에게 약간 고맙기도 하고...


나만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