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하찮지만 라면은 먹어야겠다

이란 테헤란

by 엔리께



- 왜 진즉에 찾아오지 않고... 미련하게.


‘인봉’으로 기억하는 그는 테헤란_Teheran의 한국 대사관에서 보조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사고를 당한 후 왜 곧바로 대사관을 찾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서로 동갑내기라서 나름 편하게 던진 말이었겠지만 '미련'이란 단어가 어쩐지 핀잔처럼 들려서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조금 전 대사에게 한차례 꾸중을 듣고 온 터라 그가 무슨 말을 했어도 곱게 듣지 않았을 것 같다. 근데,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스키장이 이란에 있다는 거 재밌지 않아? 그는 끊임없이 말을 이었고 스키장이 있거나 말거나 나는 흘려들으며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을에 물든 풍경 속으로 나를 태운 차가 흘러 들어간다.


나는 파키스탄의 퀘타-이란 국경행 야간 버스에서 도둑을 맞았는데 깊이 잠든 나머지 가방이 털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국경을 넘었다가 뒤늦게 가방 속의 현금이 몽땅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나마 여행자 수표는 무사해서 이를 환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경마을에서 테헤란까지, 며칠을 꼬박 이동했으나 어쩐지 가는 은행마다 아멕스 수표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시내를 돌며 뜻밖의 은행 투어를 하게 된 와중에 공교롭게도 이슬람의 공휴일과 주말이 겹치는, 이른바 황금연휴가 시작되면서 나는 더 이상 은행에 가지 못하고 공원에서 며칠을 보냈다. 아침이면 분수에서 세수를 하고, 낮에는 벤치에 앉아 동네 할아버지들과 함께 햇볕을 쬐었다. 공원에 사는 외국인이 궁금했던지 그들은 내가 있는 벤치를 자주 방문했는데, 내 사정을 듣고는 어디선가 간식거리를 들고 와서 손에 쥐어주고 갔다. 날이 어두워지면 냄새를 맡은 길고양이들이 달려들어서 나는 음식을 품에 안은 채 그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 수표는 터키로 넘아가야 환전이 가능하다는 공식적인 답을 듣고서야 나는 대사관을 찾았다. 내가 대사관을 곧바로 찾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한국 대사관은 여행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혹시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서 괜한 걱정을 만드는 건 아닐까 우려했으며 무엇보다 이 정도의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반나절을 기다린 끝에 겨우 대사를 만날 수 있었다. 넓은 책상의 저편에 대사가 비스듬히 앉아 흘겨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사는 손가락 끝으로 책상 위를 다닥다닥 두드리며, 뭔 정신으로 ‘이란’이란 곳을 여행 왔냐고, 센 말들로 나의 철없음을 꾸짖었다. 대사의 꾸짖음을 들으면서, 그는 원래 모든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면박을 주는가 싶었지만 결국은 그가 희망적인 해결책을 짠, 하고 내어줄 것만 같아서 그의 심기를 건들지 말고 참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가족에게 전화해서 돈을 받으라는 것.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해결할 거면 꾸짖지나 말든가, 나는 화가 났다. 보조 사무관인 인봉의 사무실에서 나는 막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시끌시끌한 소리로 짐작컨데, 술자리다. 누나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얼마 보내줄 수 있나? 20만 원 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괜찮아? 취준생인 누나의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20만 원도 받기 미안한 금액이었기에 나는 말을 더 붙이지 않았다. 다만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송금받은 돈을 인봉이 20만 원어치의 이란 리알로 바꿔주며, 밥 해줄 테니 자신의 숙소에서 하룻밤 지내다가는 건 어떠냐고 했다. 밥이란 말에 나는 솔깃해져서 그의 차에 올라탔다. 숙소는 대사관에서 제법 거리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테헤란 시내 멀리에 설산이 보였다. 저기가 스키장이 있는 곳인가. 인봉은 스키장 얘기를 시작으로 이란의 정세가 어떻다, 이란의 과일이 얼마나 달고 맛나는지 모른다, 그게 다 관개농업 덕분이라는 과연 대사관 직원다운 말들을 쉬지 않고 했다. 뒤이어 이란에서 사는 것이 어떤지, 자신이 어쩌다 대사관에서 일하게 됐는지를 들으며 나는 그가 얘기할 누군가가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남자의 메뉴는 라면이었다. 대추야자 같은 단 것들만 먹어온 터라 라면이 어떤 음식보다 먹고 싶긴 했다. 사실 오는 길에 ‘미련하게’란 말을 듣는 순간 자고 가야겠단 생각은 사라졌다. 인봉의 호의는 고맙지만 대사관에서의 일에 자존심도 상했고 심통도 나서 어쩐지 한국 대사관의 숙소에서는 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자존심은 얄팍했던지 밥은 얻어먹고 싶었던 것이다. 라면을 끓이는 인봉에게 한 봉지 더 추가!를 외치며 총 세 그릇의 라면에 밥까지 말아서 먹었다. 이때가 아니면 당분간 라면은 구경도 못할 것 같아서 배가 불렀음에도 목구멍으로 면과 밥알을 밀어 넣었다.


인봉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누나에게 받은 돈으로 숙소를 잡을까 하다가 이 돈으로 이란을 빠져나가 터키까지 가야 한다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공원을 향했다. 빵빵한 배를 안고 뒤뚱뒤뚱 걸으며 나는 대사의 눈빛과 말과, 미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만약 내가 여행자가 아닌 다른 입장으로 도움을 청하러 갔어도 그들은 같은 말을 했을까. 내 여행이 그렇게도 별 볼 일 없는 것인가. 내 여행이 그렇게도 하찮은 것이었을까. 그 순간, 속이 부대끼더니 먹었던 것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나는 대로변의 가로수 밑동에 대고 토를 했다. 토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양이 많아 바지 밑단과 신발에 튀고 난리도 아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쏟아지는 토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라면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여행, 참 하찮네..



그나마 다행히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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