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과 걷는다

파타고니아 또레스 델 파이네

by 엔리께


거인들이 살았던 땅을 향해 배가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갑판에 서서 내가 걸을 땅을 바라보았다.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마젤란이 원주민들의 큰 발을 보고 파타(발), 곤(큰)이라 부른 것에서 파타고니아의 지명은 유래됐다고 한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남위 40도 아래 남쪽으로 펼쳐진 이 지역에 내가 온 이유, 또레스 델 파이네_Torres del paine가 여기에 있다.

텐트와 침낭, 식량과 장비가 든 배낭을 짊어지고 나는 4일간 또레스 델 파이네를 걸었다. 가다가 캠프 사이트가 나오면 텐트를 설치해놓고 근처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식의 코스. 옥빛 호수와 협곡 사이로 간신히 이어지는 길들을 하루 온종일 걸었다. 이따금 배가 고프면 사과와 삶은 달걀을 꺼내 간식으로 먹었다. 달걀이 퍽퍽해서 목이 메면 믹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그러다 또 출출해지면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걷는 것과 먹는 것 빼면 달리 할 것 없는 일정이라 나는 계속 먹었다. 언덕 위의 맞바람이 강해서 속도가 나지 않자 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줏어다가 지팡이처럼 사용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우비를 걸치고 걸었는데 비닐 속을 가득 채우는 내 호흡을 듣고 있으면 이 길 위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길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펼쳐져 있지만 신이 난 나는 자꾸만 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졌다. 기억 속의 온갖 것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도 있었고, 재미난 일도 생각나서 나는 피식 웃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말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곤 했다.

매 저녁은 정성껏 차려서 그날 고생한 나를 먹였다. 하얀 쌀밥을 지었고 말린 홍합과 조갯살을 넣어 라면을 끓였다. 통조림 고기를 잘라 냄비 뚜껑에다 지져내고 배낭 깊숙이 넣어놓았던 위스키를 꺼내 한 모금씩 홀짝였다. 사실은 빙하 조각을 넣어 언더락으로 마시려 했던 위스키였으나 안타깝게도 빙하 가까이에 닿지 못했다. 대신 몇 모금의 술은 먼 기억들을 내 앞으로 데리고 왔다. 밤 한가운데 앉아서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먹었다.

새벽같이 눈을 떴다. 캠프 사이트 간의 거리가 제법 있어서 부지런히 걸어야 했기 때문에 간단히 요기를 하고 출발했다. 일어나면 텐트 안에 이슬이 가득 맺히고 침낭은 밤새 습기를 먹어 눅눅하게 젖어 있었지만 깊이 잔 덕분에 온 몸 가득 새로운 힘이 차 있었다. 걸으며 온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을 즐겼고 하루를 지날 때마다 배낭이 가벼워지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지막 날의 일출은 놓칠 수 없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는데 하필이면 바깥에 내다 놓은 음식 봉지를 뜯고 있던 들짐승과 눈이 마주쳤다. 잠깐 멈춰 서로의 눈치를 보던 와중에 나는 이게 쥐인 지 다람쥐인지 생각했다. 놀라서 달아나는 들짐승에게 그 녀석이 갉아먹던 음식을 던져주고 나는 짐을 챙겨 일출 장소에 올랐다.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라스 또레스_Las torres에서의 일출이다. 눈 앞에 어슴푸레 거대 바위산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세 명의 거인을 마주하는 느낌. 일출이 시작되자 용암을 들이붓듯 봉우리부터 시뻘겋게 타들어갔다.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찼던 세상에 붉은빛이 팍, 하고 터지는 찰나를 나는 숨죽여서 지켜봤다. 설렘 일지, 삶의 의욕 일지 모를 묘한 감정이 동시에 내 안에 일었다. 이 땅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비단 큰 발을 지니고 있어 거인이었다기보다 매일 같이 이런 광경을 마주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거인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 앞에 인간은 작은 존재임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호연지기도 기를 수 있지 않았을까.


평소의 나는 흐리멍덩한 편이라서 뭔 일 하나를 하더라도 주변 상황에 잘 휩쓸리곤 한다. 그렇다 보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내 의지와는 다른 곳에 와 있기 일쑤. 사회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쉽게 피로를 느끼곤 하는데 그럴 때 나는 여행을 떠났다. 가령 걷는 여행 같은 것. 걸을 때 나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됐다. 말하자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오랜 시간을 걷는 트레킹은 내가 지도의 중심에 서서, 내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므로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에,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치유법과도 같은 여행. 이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의 강인한 정신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파타고니아의 거인들처럼.




거인이 깨어나는 순간, 나는 삶의 의욕 같은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