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by 엔리께


다행히도 헬리 라운지 바가 있는 메나라 빌딩은 부킷빈땅의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헬기 착륙장을 개조한 34층의 이 라운지 바에서 쿠알라룸푸르_Kuala Lumpur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유명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자 싶었다. 작은 테이블 하나 차지하고 앉아 밤이 되길 기다렸다. 나처럼 밤을 기다리느라 의자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꿈쩍 않는 여행자들이 많은지 웨이터들은 주기적으로 테이블 사이를 돌며 빈 잔을 치웠고 추가 주문 여부를 물었다. 평소처럼 술을 들이켰다간 야경을 보기도 전에 돈이 바닥날 것 같아서 나는 성미를 죽이고 고양이가 물먹는 마냥 홀짝홀짝 술을 들이켰다. 어둠이 내리고 도시의 불빛도 하나둘씩 켜질 무렵 수트와 드레스를 입은 현지 사람들이 바에 들이차기 시작했다. 조명이 켜지고 라운지 음악으로 파티 분위기가 연출됐다. 3개월간의 동남아 여행을 떠올리며 한껏 들떠있던 나는 가만히 앉아있기가 아쉬워 술잔을 들고일어났다.


평소에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를 부를 땐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의 억양이 나오고 그게 발성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보기보다 노래를 좀 한다는 것. 하지만 사실 나는 춤을 더 잘 춘다. 학창시설에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을 갔다가 춤으로 양주를 딴 이력도 있다. 웃통을 까고 바닥을 기어가는 이른바 굼벵이 춤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정작 같이 간 친구들은 나를 부끄러워했다. 가벼운 몸짓에서부터 굼벵이 춤 같은 하드코어 댄스까지 꺼리지 않는 나는 청소를 하는 와중에도 음악을 틀어놓고 둠칫 둠칫 춤추기도 한다. 기분에 취한 나는 잔을 든 채로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혼자 춤을 추는 나를 친구들이 본다면 여전히 부끄러워하겠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고깃집에서 혼자서 소주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이다. 내 즐거움을 스스로 알뜰살뜰 잘 챙기는 편이다.


대학로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접고 재충전할 겸 나는 동남아로 날아왔다. 카페를 정리하며 나오는 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브런치 카페를 인수해버렸다. 회사생활만 하던 내가, 집에서 믹스커피만 마시던 내가 요리와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15평 남짓한 공간에 나는 내 생활을 쏟아부었다.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을 했고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몇십 년간 가게를 지킨 대한민국의 사장님들이 존경스러울 만큼 장사라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고, 의외로 내가 많은 것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증의 카페는 섭섭함과 동시에 통쾌함도 안겨줬다. 감옥처럼 갇혀 지내던 곳을 드디어 빠져나왔다는 해방감, 안도감, 통쾌함. 원래 동남아 여행의 목적은 재충전을 하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할 계획이었지만 넓은 동남아를 돌아다니는 일은 생각할 틈을 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매일을 노동하듯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바지런히 기웃댔다. 그래서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무계획이지만, 그동안 고생했으니 나를 채근하지 말고 당분간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이렇게 인생에서 또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 나를 위해서 오늘은 춤으로 자축!


쿵짝쿵짝, 신나는 비트 속으로 쿠알라룸푸르의 밤이 달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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