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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2. 2023

카자흐스탄 소녀가 건네준 수제 치즈볼

"요즘에도 카자흐스탄에는 유목민이 있어?"

2022년 10월. 

어학당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반에서 가장 친해진 친구는 카자흐스탄 친구 A.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언니인데 카자흐스탄에서 대학교수로 오래 근무하다가 독일계 프랑스인 남편을 따라 낭시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녀와 나는 오늘 3시간의 공간시간을 활용해 시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나 카자흐스탄에서 가르쳤던 제자를 잠깐 보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그녀가 카자흐스탄에서 가르쳤던 여학생 한 명이 석사학위를 위해 불과 이틀 전에 낭시에 들어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이 멀고 낯선 땅에서 고국의 스승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든든할까.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느긋하게 스타니슬라스 광장을 향해 걸으며 가을 풍경을 감상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었지만, 또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나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녀와 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카자흐스탄이라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흥미로웠다. 


잠시 후 그녀의 제자가 도착했다. 동글동글 앳된 얼굴에 안경을 낀 여학생은 A를 위해 고국에서 가져온 먹거리가 담긴 봉투를 선물로 건넸다. 


이건 학생의 어머니께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내신 수제 치즈라고 한다. 하나 주길래 덥석 먹어 봤는데 엄청 짜다. 

"이건 카자흐스탄 유목민들이 우유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전통 치즈야. 요구르트처럼 만든 다음에 손으로 뭉쳐서 햇빛에 말린 거지." 

"요즘에도 카자흐스탄에는 유목민이 있어?"

"응,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있어." 

치즈는 매우 단단했는데, 조금씩 잘라먹다 보니 유목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 형태의 음식이었을지가 가늠이 되기도 했다. 이 작은 치즈 한알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우유가 농축되어 있었고 한 알에 배가 금방 불러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를 않네... 그래도 여학생의 어머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보내셨을지를 생각하며 소중하게 먹었다. 

친구 역시 고국에서 온 어린 제자가 반가웠는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고 국어로 쉴 새 없이 안부를 묻는 모습이었다. 


"근데 여기는 물가가 너무 비싸요. 오늘 아침에 슈퍼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놀랬어요..." 

아직 프랑스어가 서툰 제자의 말을 친구가 통역해 주었다. 내가 소녀를 향해 대답했다. 

"레스토랑은 비싸지만 한국에 비하면 식재료는 싸더라고요. 과일, 야채, 고기, 우유, 버터, 치즈, 빵 등등... 한국은 더 비싸거든요." 

내 말에 귀여운 얼굴의 여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은 여기보다 비싸요? 카자흐스탄은 여기보다 엄청 엄청 더 저렴하거든요..." 

걱정이 한가득인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유용한 정보를 하나 알려주었다.

"아, 로렌대학교라고 했지요? bourse 꼭 신청하세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예요. 얼마 전 브라질 학생도 환율 때문에 힘들다면서 신청했다고 하던데 지금 신청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서 대기가 기대요. 그러니까 오늘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신청해 봐요. 그게 있으면 학식도 1유로로 먹을 수가 있어요." 

내 말을 귀담아들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여학생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셋이서 천천히 학교를 향해 걸어갔는데, 학교에 도착했을 때쯤이 돼서야 내 손에 들려있던 치즈볼이 모두 뱃속으로 옮겨갔다. 친구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갖다주라고 몇 개를 더 챙겨주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 치즈는 오히려 친구에게 더 귀하고 값진 음식일 테니까. 

나는 두 사람이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먼저 강의실로 들어가며 여학생과도 작별을 했다.

부디 낭시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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