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서 반대표를 뽑는 투표를 했다.
그룹별로 두 명씩 대표(délégué)를 뽑아서 수업을 마친 후 진행되는 대표자회의에 참석해서 각종 피드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거라고 했다. 지원자가 없는지 선생님께서는 은근히 부추기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수업 끝나면 저는 항상 배가 고파서 안 돼요... 거기서 혹시 음료수나 간식을 주지는 않겠지요?"
"티파티를 가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웃었다. 내가 맨날 먹는 얘기만 한다는 사실은 우리 반 사람들 모두 익숙하다.
결국 투표가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 종이를 나눠주셔서 거기다 두 명씩 이름을 써냈는데 어쩌다 보니 나랑 콜롬비아 남학생이 선출되었다.
"오늘 내가 가져온 수제쿠키가 다들 맛있었나 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 때문에 나를 뽑아준 게 맞다고들 했다. 반대표가 된 나는 인심 쓰는 척 쿠키상자를 책상 위로 다시 올려놓고 친구들더러 맘껏 먹으라고 말했다.
"자, 그럼 오늘 남은 시간 동안에는 여러분들끼리 학교 측에 전하고 싶은 사항을 회의를 통해서 추려보도록 하세요. 저는 잠시 나가있을게요."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내 쿠키 하나를 집어 들고나가셨고 우리는 의외로 열띤 회의를 했다. 불만 사항이 꽤 많았나 보다.
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정리하고 나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도 함께 정리했다.
1. 수업에 늦는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수업이 지체되는 경향이 있다. 제시간에 온 학생이 한두 명뿐일지라도 제시간에 수업을 시작하기를 원한다.
2. 외국인으로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주제나 표현을 먼저 공부하기를 원한다. (시를 창작하거나 혹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표현들을 배우는 건 좀 더 나중에...)
3. 컴퓨터학습실에서 수업하는 2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그날 달성해야 할 미션을 준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나은 게 없지 않은가.
이 정도로 내용이 추려졌다.
그리고 이틀 후에 반대표 회의가 열렸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회의를 기다리며 콜롬비아 남학생이랑 둘이 카페테리아에 앉아 내가 가져온 바나나(나눠먹으려고 두 개 가져왔다)랑 시어머니께서 디종에서 사다 주신 살구빵을 나눠 먹었다. 그걸 먹으면서 우리는 귀신얘기를 했다. (이 19세 소년은 귀신얘기를 매우 좋아한다. 콜롬비아 귀신 얘기는 또 처음 들었네.)
다른 그룹들도 다 같이 모이는 회의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그룹별로 따로 진행이 되었다. 회의실에는 선생님 한분이 앉아계셨다. 우리는 미리 정리해 간 내용들을 모두 전달했다.
"혹시 그 외에 또 다른 건의사항은 없나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지막 건의사항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다음번 회의 때는 다른 반 대표들도 다 같이 모여서 다과회처럼 회의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음료수도 있고 간식도 있고... 그런 가벼운 분위기에서 좀 더 편안한 대화들이 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콜롬비아 소년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두 눈은 질끈 감은 채 입만 웃고 있었다.
"너 내가 창피하니?"
내 말에 소년은 대꾸도 없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창피한 거구나.
"좋은 생각이에요. 다음 회의 때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다과와 함께 회의를 해 보자고 건의해 볼게요."
선생님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소년은 어느새 나와 함께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 내 덕이다."
소년은 나를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같이 웃으셨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끝났다. 다과회라는 성공적인 결실(사리사욕)을 끌어낸 채로 말이다.
반대표 별거 아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