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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2. 2023

우리 반 반장이 되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반대표를 뽑는 투표를 했다. 


그룹별로 두 명씩 대표(délégué)를 뽑아서 수업을 마친 후 진행되는 대표자회의에 참석해서 각종 피드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거라고 했다. 지원자가 없는지 선생님께서는 은근히 부추기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수업 끝나면 저는 항상 배가 고파서 안 돼요... 거기서 혹시 음료수나 간식을 주지는 않겠지요?" 


"티파티를 가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웃었다. 내가 맨날 먹는 얘기만 한다는 사실은 우리 반 사람들 모두 익숙하다. 


결국 투표가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 종이를 나눠주셔서 거기다 두 명씩 이름을 써냈는데 어쩌다 보니 나랑 콜롬비아 남학생이 선출되었다.


"오늘 내가 가져온 수제쿠키가 다들 맛있었나 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 때문에 나를 뽑아준 게 맞다고들 했다. 반대표가 된 나는 인심 쓰는 척 쿠키상자를 책상 위로 다시 올려놓고 친구들더러 맘껏 먹으라고 말했다. 


오트밀과 초콜릿으로 직접 구운 쿠키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려고 자주 들고 다녔다.



"자, 그럼 오늘 남은 시간 동안에는 여러분들끼리 학교 측에 전하고 싶은 사항을 회의를 통해서 추려보도록 하세요. 저는 잠시 나가있을게요."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내 쿠키 하나를 집어 들고나가셨고 우리는 의외로 열띤 회의를 했다. 불만 사항이 꽤 많았나 보다. 


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정리하고 나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도 함께 정리했다. 



1. 수업에 늦는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수업이 지체되는 경향이 있다. 제시간에 온 학생이 한두 명뿐일지라도 제시간에 수업을 시작하기를 원한다. 

2. 외국인으로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주제나 표현을 먼저 공부하기를 원한다. (시를 창작하거나 혹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표현들을 배우는 건 좀 더 나중에...) 

3. 컴퓨터학습실에서 수업하는 2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그날 달성해야 할 미션을 준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나은 게 없지 않은가. 



이 정도로 내용이 추려졌다. 


그리고 이틀 후에 반대표 회의가 열렸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회의를 기다리며 콜롬비아 남학생이랑 둘이 카페테리아에 앉아 내가 가져온 바나나(나눠먹으려고 두 개 가져왔다)랑 시어머니께서 디종에서 사다 주신 살구빵을 나눠 먹었다. 그걸 먹으면서 우리는 귀신얘기를 했다. (이 19세 소년은 귀신얘기를 매우 좋아한다. 콜롬비아 귀신 얘기는 또 처음 들었네.) 



다른 그룹들도 다 같이 모이는 회의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그룹별로 따로 진행이 되었다. 회의실에는 선생님 한분이 앉아계셨다. 우리는 미리 정리해 간 내용들을 모두 전달했다. 


"혹시 그 외에 또 다른 건의사항은 없나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지막 건의사항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다음번 회의 때는 다른 반 대표들도 다 같이 모여서 다과회처럼 회의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음료수도 있고 간식도 있고... 그런 가벼운 분위기에서 좀 더 편안한 대화들이 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콜롬비아 소년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두 눈은 질끈 감은 채 입만 웃고 있었다.


"너 내가 창피하니?" 


내 말에 소년은 대꾸도 없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창피한 거구나. 


"좋은 생각이에요. 다음 회의 때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다과와 함께 회의를 해 보자고 건의해 볼게요." 


선생님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소년은 어느새 나와 함께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 내 덕이다."


소년은 나를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같이 웃으셨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끝났다. 다과회라는 성공적인 결실(사리사욕)을 끌어낸 채로 말이다.  


반대표 별거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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