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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로 결국 돌아왔다.

by 혜연

글쓰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부터 나는 글을 다시 쓸 용기가 없었다. 수개월 후 티스토리 오랜 구독자들의 댓글 덕분에 용기를 얻어 글을 다시 쓰게 되었고 그것은 내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달 동안 속에만 꼭꼭 눌러두었던 상처 가득한 기억인데 다시 끄집어 내다보니 글을 쓸 때마다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떤 상처는 속에 묻어두는 게 좋다고도 하지만 다시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상처가 기체처럼 흩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속 깊은 곳에서 더 오래 썩어 악취가 나기 전에 용기 내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고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상황과 생각이 다시금 정리되는 느낌도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티스토리의 무분별한 댓글에 지친 요즘 브런치로 조금씩 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써야 하지.


남편의 불륜과 시부모님과의 손절에 대한 내용을 먼저 풀어가야 할 텐데 브런치에는 온통 시댁 이야기뿐이네.


이걸 다 삭제하는게 맞는건가...?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예전 글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역시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덤덤하게 예전 글을 열어 볼 수도 있는 상태가 되었네.


예전 글을 지우지는 못하겠다.


이 또한 내 이야기니까.


저들에게 진짜가 아니었더라도 나에게는 진짜였다.

그랬기에 책까지 출판할 생각을 했던 거지.

후회는 없다.
원망도 없고.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한다. 모두 꼭 일어나야 했던 일이라고.

한때는 딱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결혼만 안 했더라면 커리어도 잃고 돈도 잃고 엄마가 될 기회도 잃지 않았을 텐데 하며 남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기에 나는 지금과 같이 단단한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나는 지금 내 인생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만족스럽다.

그 이야기들을 앞으로 천천히 풀어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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