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결정하고도 나는 남편의 집에서 여전히 숨 막히는 동거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사 나갈 집을 구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고맙게도 동생 M의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보증을 해 주겠다고 나서준 덕분에 집 검색에 속도가 붙었다.
나는 날마다 프랑스판 당근인 봉꾸앙(le boncoin)을 뒤졌다. 중고거래 사이트지만 집거래도 할 수 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 한 곳을 발견했다. 제발 제발 이번엔 꼭 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매물을 올린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사람은 바로 답장이 왔고 왠지 믿음이 갔다. 그 사람은 전화로 설명하는 게 빠를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급한 건 피차 마찬가지인지라 나는 알겠다고 번호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룩셈부르크 국가번호가 찍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사람은 사실 집주인은 아니고 아들이 낭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지내던 아파트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서 양도받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내 딱한 사정을 들은 그 남자는 집주인 할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전해주었다.
며칠 후 일요일 아침, 나는 버거라는 성을 가진 이 남자를 만나 집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버거씨는 낭시가 아니라 국경에 살면서 룩셈부르크에서 금융업에 종사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은 작긴 했지만 단열도 잘되고 위치도 좋아 보였다.
"혹시 시간 되시면 근처에서 커피 한잔 하시는 거 어때요? 아침 드셨어요?"
다음 집을 보러 가려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던 터라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근처 아랍인이 운영하는 디저트가게에서 차와 갸또를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그는 내 상황을 대충 유선으로 들었던 상태라 나를 걱정해 주는 표정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은발의 다정한 아저씨가 나를 따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말을 들어주니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폭발해 버렸다. 아이 참... 주책맞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주저리주저리 있는 대로 하소연을 해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좀 창피하기도 한데 그래도 속은 한결 편해졌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 있는 대로 다 털어놓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기도 했다.
다음 아파트를 보러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버거씨는 그곳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잘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집계약은 무산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유선으로 나를 꽤 무례하게 대했는데 소개해준 버거씨를 봐서 끝까지 예의를 다한 후 내가 싫다고 먼저 거절했다. 다행히 같은 날 두 번째로 봤던 집이 마음에 들어서 빠르게 계약이 이뤄졌다.
그런데 그 후로도 그 남자로부터 메시지가 꾸준히 왔다.
진심이든 아니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생기니 큰 위로가 되었다. 말할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달라는 말에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퇴근길에 냉담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마다 이 남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차가운 벤치에 앉아 오래오래 전화를 붙들고 무의미한 수다를 떨었다. 무료로 정신 상담을 받는 기분이랄까...
나중에 집을 구해 이사를 나갔을 때 그 남자가 낭시에 올 일이 생겼다며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예쁘게 차려입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과도 마시고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는데 그야말로 제대로 기분전환이 되었다. 나를 여왕처럼 대해주는 젠틀한 모습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와 얼굴이 너무 달라 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그땐 너무 슬퍼 보여서 마음 아팠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거지요? 비결 좀 알려주세요. 사실 저도 최근에 아버지보다 가깝게 지냈던 삼촌을 잃어버렸고 아들의 우울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이야기가 좀 긴데요..."
"저는 듣는 거라면 자신 있어요.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재미있어요. 요즘 당신이 저의 롤 모델이라면 믿겠어요?"
그 남자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건 놀라워하며 경청해 주었다.
나보다 열 살 연상이라고 한다. 은발이라 솔직히 그것보다 더 많게 봤는데 남편이랑 동갑이었네. 근데 성격은 여러모로, 극단적으로, 정반대였다.
그 후로도 이 남자는 나를 만나기 위해 주말마다 낭시로 찾아왔고 나는 거절하지 않고 만났다.
사실 별거전부터 친구들 주선으로 소개팅이 두 개나 잡혀 있었는데 이 남자 때문에 결국 다 거절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이미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만 했는데 반응들이 아주 거세고 다양했다.
"뭐? 벌써 누구를 만났다고??!! 대체 언제! 어디서!"
"안돼. 넌 지금 누구를 진지하게 만나면 안 된단 말이야."
"아직 진지한 관계는 아니지? 한 남자만 만나지 말고 다양하게 더 많이 만나봐야 해. 이 기회 놓치면 너 나중에 후회한다? 소개팅도 다 받아보고 나서 결정해도 돼."
"세상에... 봉꾸앙에서 남자를 만날 수도 있구나...!"
남편과 정식으로 아직 이혼이 마무리된 게 아니라서 윤리적으로 이게 맞나 싶어 친구들에게 상담을 해 보았는데 하나같이 나더러 쓸데없는 신경을 쓴다고 했다. 별거하는 순간 이미 남편은 엑스(ex)이고 더 이상 그 사람을 남편이라고 불러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군...
이 남자는 나를 기쁘게 해 주는 게 본인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한다. 나는 삶이 던져주는 작은 선물처럼 그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고 받기로 했다. 혹시라도 이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지더라도 나는 언제나 버거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내 손을 꽉 잡아준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로 인해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가볍고 행복해졌는지 반복해서 말해준다. 오히려 고맙다면서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관계로 발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에만 집중하고 싶다. 어차피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 새로운 인연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알아서 이끌어 주겠지.
버거씨는 본인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내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서 내 친구들도 다들 좋아한다. 다 함께 춤을 추러 가는 것도 좋아한다. 잘 추지도 못하면서 음악만 나오면 자동으로 나와 같이 몸을 씰룩거린다. 내 가치를 알아봐 주고 나를 웃게 하는 게 우선순위라고 말하는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해 준 세상이 고맙다.
싱글 친구도 기혼친구도 말했다. 이 나이에 내가 설렘을 가지고 연애를 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저기요...? 나 최근에 10년 같이 산 남편한테 배신당했거든요...? 오랜 꿈이었던 엄마가 되는 것도 포기했다고요...
다들 멀쩡하게 커리어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 같아 보여도 가슴 한쪽에 크고 작은 빈 공간을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이없게도 나는 무스카델만큼이나 엑스-남편 생각을 자주 한다. 가족으로서 그립고 걱정이 되고 나만큼 그 둘도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집을 떠나올 때 내가 용서한다고 말해주길 잘한 것 같다.
언제나 마음이 단단한 쪽은 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