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드막 투머치토커

by 혜연

버거씨네 동네 근처에 호드막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입구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매년 이곳에서는 중세마을 축제가 열리는데 버거씨가 오래전부터 몇 번이나 말해줬던 내용이라 꽤 큰 기대를 하고 기다려오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왔다.

"중세마을 축제에서는 중세시대 복장을 하면 입장료가 무료야."


마을 입구에서부터 각양각색의 복장들을 볼 수가 있었다. 아 나 설레! 정말 좋아!

내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했던지 오히려 버거씨가 더 기분 좋아했다. 이게 그렇게나 신기하냐면서 말이다. 아니 이런 게 안 신기하면 대체 뭐가 신기한 건데~~!! 완전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아 물론 우리는 복장을 갖추지 않아서 온전히 입장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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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내고 마을로 들어갔더니 각종 판매 부스들이 양쪽에 길게 늘어져있었다.
대체 저런 복장들은 어디서 들 구하는 건가 싶었는데 다양한 전통복장과 소품을 판매하는 부스들도 꽤 많았다.

사람들의 복장을 구경하느라 내 눈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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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당연히 전부다 복장들을 갖춰 입고 있었다.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귀족복장을 하고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전통복장의 범위는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귀족, 평민, 왕족, 병사, 해적, 마녀, 곡예사, 농민, 수도사, 용사, 마법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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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것질을 하면서 사람들의 복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종일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공연 등의 프로그램도 아주 다채로워서 그야말로 볼거리가 풍부한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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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공예 체험을 하는 곳에 잠깐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곳 지도 선생님으로 보이는 마담이 갑자기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들으러 모여들었고 마담은 옛날과 현재에 도자기 활용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중간중간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버거씨 혼자만 모범생처럼 열심히 대답했다.


갑자기 출현한 트롤들에 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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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이 너무 완벽한 거 아닌지?
앞모습은 무시무시한데 뒷모습을 보고 빵 터졌다. 등에 지고 있는 케이지속에 심술궂게 생긴 난쟁이가 하나 잡혀있었는데 혼자서 머리를 흔들고 있는 표정이 너무 리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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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든 공연들에는 전통악기들만이 사용되었다.

다양한 프랑스 전통악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음악들이 너무나 흥겹고 악사들도 전문 뮤지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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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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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사랑하는 중년 커플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 마리는 가짜고 한 마리는 진짜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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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축제문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볼거리가 너무 풍성하고, 바가지도 없고, 모든 연령층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쏟아져 나왔고 낯선 이방인들에게도 환하게 웃어준다.
말 그대로 흥겨운 마을 축제분위기에 나는 온종일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플람키쉬와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웠을 때 버거씨는 게이트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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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밖에도 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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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게이트 밖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성안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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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져있는 막사 앞에서 큰 솥에다 요리를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꼬맹이가 지나가다 말고 그게 뭐냐면서 다가갔는데 아주머니께서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못 알아들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좋겠다... 프랑스어를 잘해서...


무기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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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과 무기를 내려놓고 막사 안에서 쉬고 있는 병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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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눈을 잡아끄는 장면이 있었으니...

막사 앞에 병사(마네킹) 한 명이 피를 흘리며 누워있네?

나는 그걸 보고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포로를 고문하는 곳인가 봐."


내 말에 버거씨가 빵 터졌다. 사실은 반대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곳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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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구가 다양하군..."


무시무시한 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보고 나는 또 한차례 버거씨 귀에다 속닥거렸다. 혼자만 웃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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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에게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는 이 분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셨다.


"저는 전쟁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우리 버거씨는 기어이 중세 의사 선생님께 내가 한 농담을 들려드리고 말았다.


"얘가 여기는 고문하는 곳이냐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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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은 지금 전쟁 중 급하게 머리를 수술할 때 두개골을 뚫는 장비를 설명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이걸로다가 머리에 갖다 대고 요렇게 요렇게 돌려서 두개골을 똬악..."


무시무시한 설명을 아주 친절하게 해 주시는 중...


관광객들은 모두 돌아가고 의사 선생님은 나와 버거씨를 위해 다양한 장비들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열심히 경청했더니 좀 신나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전쟁터에서 수술할 때 가장 많이 필요한 게 뭘까요?"


이 질문에 버거씨가 자신 있게 혈액이라고 대답했는데 중세의사 선생님은 잠시 당황하신 듯 숨을 고르시더니 정답은 붕대라고 하셨다.


"피가 많이 나는 병사들을 지혈하기 위해선 많은 붕대가 필요해요. 여기 가죽자루에 담긴 것들은 당시 붕대 대신에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것을이예요."


"이건 양털인가요?"


"네, 맞아요. 양털이면 아주 좋은 대체제이지요. 각종 동물털을 썼어요. 심지어 이 머리카락 보이시나요? 적군의 머리카락으로 피를 닦기도 했어요."


음... 머리카락이 흡수가 안되는데... 금발이라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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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들을걸 다 들은 것 같은데 우리 투머치토커 버거씨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마치 우등생 학생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중세 의사 선생님도 버거씨와의 대화를 꽤 즐기시는 듯했다.

투머치토커와 투머치토커가 만났구나...

초반에는 나도 꽤 열심히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류의 전쟁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비교하는 단계가 왔을 때 나는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네 싶어서 어떻게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인류가 전쟁을 멈출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요. 인류는 이 멍청한 짓을 계속하게 될 거예요."


중세의사 선생님은 암울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 좋은 축제날 버거씨가 의사 선생님을 우울하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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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기다리잖소...

이 보시오들.... 환자가 피를 흘리며 수술을 기다리고 있잖소...

병사아저씨 좀만 참아요. 의사 선생님이 봐주실 거예요.


실제로 나는 버거씨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선생님을 이만 놓아주라고...

버거씨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던지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하다면서 의사 선생님을 놓아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분명 '나보다 더 말이 많은 사람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나도 버거씨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버거씨는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가 너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대로 두면 대화 내용을 죄다 나한테 다 말하고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다음부터는 내가 손가락으로 이렇게 리모컨을 누르는 시늉을 할게. 음소거 버튼을 누르는 거지."


"알았어! 내가 말이 많아지면 꼭 그렇게 해줘. 바로 알아들을게!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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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치르는 구역을 빠져나왔더니 다시 평화로운 중세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암 전쟁은 안되지...


버거씨는 나와 함께 오니 매년 보던 평범한 행사가 더 즐겁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별천지 같은 사건이었다.

버거씨를 만나고 내 삶 자체가 별천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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