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의 안주인이 된 기분

프랑스 부르고뉴 에어비앤비 샤또에서 기분내기

by 혜연

2024년 9월.


나는 딱히 휴가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버거씨는 나를 위해 4박 5일간의 디종 & 브루고뉴 휴가를 선물해 주었다.

download (1).jpeg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웠던 도시 디종에서 1박을 한 후 우리는 버거씨가 미리 예약했다는 숙소를 찾아 브루고뉴를 향해 갔다. 차는 마을을 여러 개 지나 점점 더 한적한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건물은 없었고 숲 속에 가려진 샤또만 하나 보이는데 네비 아가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우리 샤또에 가는 거야??"

농담 삼아 건넨 말이었는데 버거씨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와... 우리 진짜 샤또에서 묵는구나!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Z3HrzeQ8wMp%2BKBNrKQHbuaJvVfY%3D 정말 큰 샤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춘기 때 즐겨 사 모으던 편지지속에 자주 등장하던 흑백 사진 속으로 들어온 듯 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너무 좋아했더니 버거씨는 나를 마담 샤틀렌(chatelaine)이라고 불렀다.

"샤틀렌이 뭐야?"

"응, 샤또의 여주인이지. 남자주인은 샤틀랑이라고 불러. 여기서 머무는 동안 너는 마담 샤틀렌이야."

"알았어. 무슈 샤틀랑!"

그래 뭐 여기 머무는 동안에는 우리가 주인이지 뭐.



다음날 아침.

샤또 안주인(샤틀렌)으로써의 첫날 아침이 밝았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E3lciH%2FTl6zkClA6bEBfZksXZV8%3D


나보다 일찍 일어난 버거씨는 부지런하게도 동네 블랑쥬리에 다녀왔다. 신선한 빵오쇼콜라와 건포도가 박힌 달콤 고소한 브리오슈를 사 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는 커피 대신에 두유를 마셨고 과일, 견과류 그리고 화이트치즈(프로마쥬블렁)에 망고 퓌레를 뿌려서 맛있게 먹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YA0cu4XUu5SEeqCEy4f35%2B6r3Nk%3D


아침을 먹은 후 버거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왔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V0kbJIzcp%2BPRg6PCM3wteN8e4Y8%3D


날씨가 좀 변덕스럽다. 오후에 야외활동을 예약한 게 있는데 제발 비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voexNHJ%2BljIOhyiJ8ur7sG59TZ4%3D


의자에 기대 누워서 책을 읽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xU%2FCMd0J%2BAGx8Vm4jO%2FfeHULEJE%3D


잠시 후 나를 찾아 내려온 버거씨가 내 옆에 와서 같이 누웠다.
우리는 수다도 떨고 책도 읽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오후에 우리는 차로 미리 예약한 액티비티 사무실을 찾아갔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8YhComHNM%2Br4Q4vcZ5bxxIC58Lk%3D 킥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우리가 예약한 액티비티는 바로, 포도밭 사이를 질주할 수 있는 전동 킥보드였다.

하루에 세 번 세션이 정해져 있길래 단체로 가이드랑 같이 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킥보드만 대여해 주는 거라고 해서 1차로 당황했다. 그리고 킥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우리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사장님은 타는 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신 후 우리가 잘 탈 수 있는지 집 주변을 한 바퀴 돌게 하셨다. 솔직히 우리 둘 다 좀 어리바리하게 탔는데 사장님은 이 정도면 문제없다며 곧바로 찻길로 우리를 내몰았다. 이게 맞는 건가요...? 기어 5단 중에 2단까지만 보셨잖아요...


버거씨는 미리 2시간으로 비용을 지불한 상태였다.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다! 1인당 45유로! 두 명이서 90유로를 지불한 것이다. 심지어 보증금이 1인당 500유로였다고 한다. 버거씨는 사장님께 슬쩍 킥보드 가격을 물어봤는데 한대 값이 4900유로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싼 대여료를 납득하게 되었다.

버거씨는 이날 온종일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려보았다고 한다. 4900유로짜리 킥보드를 스무 대를 사고, 한 달에 몇 번, 비수기 빼면 일 년에 총얼마를 대여해야 남는 장사일까... 유지보수는 사장님이 직접 하시니 비용이 절감될 것이고 한몇 년 운영하다가 중고로 팔면...? 결론은 많이 남는단다ㅋㅋ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q5bTyORvpRVyhxglVRHpPLnpGXA%3D


잔뜩 긴장한 상태로 우리는 큰 바퀴의 킥보드를 몰아 우선 근처 작은 마을로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JY1Psm0IcHcqy%2Fp3cQmPapp5pn0%3D


그런데 곧 비가 후드득 쏟아지고 말았다.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

다행히 빗방울이 굵진 않았다.
그런데 킥보드에 적응을 하고 나니 이 날씨가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처럼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는 날씨였더라면 오히려 더워서 괴로웠을 것 같은데(팔도 엄청 탔을 것 같다!) 보슬비를 맞으며 포도밭 사이를 질주하니 어찌나 기분이 상쾌하던지!!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rV93ZrZs0bLLFrLUhuH3br1BleU%3D


처음에는 2단까지만 올려도 너무 빠르고 무서웠는데 어느새 우리는 5단까지 올려서 씽씽 달리기 시작했다. 오예!!

특히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빨라지는데 이때는 마치 내가 날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차도 없어서 우리는 맘껏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2BmgO75onDEhMywk143dAuZUC8ho%3D


비 때문에 진흙이 튀어서 킥보드가 금세 엉망이 되었다.
문제는 바퀴에서 튄 진흙이 킥보드에만 튀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jCiJv9TgFR1PWo8zaUwuGLJ2AJc%3D


버거씨가 내 뒷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대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웃는지 짐작이 갔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얼 보고 웃었건 간에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해."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RXALsQt2%2B2kECcnzHORtfi43osg%3D


검은 바지랑 흰 바지가 같을 순 없지.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웃던 버거씨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더 심하게 웃기 시작했다.

"설사했어?"

이 한마디에 버거씨는 결국 웃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 이런 농담을 좋아하는구나. 그럼 자주 말해줘야지. 설사는 좀 괜찮아? 아직도 그래? 이따 약 사러 가자. 내가 온종일 이렇게 놀려댈 때마다 버거씨는 매번 빵빵 터졌다.


우리는 포도밭뿐만 아니라 예쁘고 한적한 작은 마을들을 몇 개나 지나쳤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3ngrLwyxihnxy6KTH5dtT76sPZQ%3D


작은 골목길, 오래된 시골집들, 돌담들을 지나치며 그 아름다움에 여러 번 감탄하고 그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고프로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모든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eoqQQHu2krd%2FJhIkmadd0F9PLR4%3D


어느 순간 나는 앞서가는 버거씨를 불러 세웠다. 버거씨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배고파. 먹을 거 있어?"

내 말에 버거씨가 껄껄 웃으며 가방에서 브리오슈 한 조각을 꺼내주었다.


아침 점심을 그렇게 든든하게 먹었으면서 나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한입에 욱여넣고 씹기 시작했다. 버거씨가 얼른 한 조각을 내 손에 더 쥐여주었다. 나는 그냥 빨리 입에 넣고 다시 타려고 그랬던 건데ㅋㅋ


서서 타니까 확실히 속도감이 다르다. 처음부터 5단으로 출발하면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통이 내 팔에 휙 딸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l6m1PiNwbK361Z0wj%2BKWydi2COo%3D 안녕 망아지야? 넌 다리가 짧구나.


동물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예쁜 집들도 정말 많았다.

두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vK8k6MyQmXBDDGkfDNln1NQM3e4%3D



샤또로 돌아오는 길에 버거씨가 말했다.

"마담 샤틀렌, 피곤하지?"

"아니 안 피곤 해. 무슈 디아헤."

샤틀렌은 샤또의 여주인을 뜻하는 단어이고, 남주인은 무슈 샤틀랑이라고 버거씨가 전날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버거씨를 샤트랑이 아닌 무슈 디아헤라고 불렀다. 디아헤는 설사라는 뜻이다.
버거씨가 운전하다 말고 또 미친 듯이 웃었다. 좋아하는구나.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무슈 디아헤다. 설사 아저씨.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환상의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