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르고뉴 에어비앤비 샤또에서 기분내기
2024년 9월.
나는 딱히 휴가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버거씨는 나를 위해 4박 5일간의 디종 & 브루고뉴 휴가를 선물해 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웠던 도시 디종에서 1박을 한 후 우리는 버거씨가 미리 예약했다는 숙소를 찾아 브루고뉴를 향해 갔다. 차는 마을을 여러 개 지나 점점 더 한적한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건물은 없었고 숲 속에 가려진 샤또만 하나 보이는데 네비 아가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우리 샤또에 가는 거야??"
농담 삼아 건넨 말이었는데 버거씨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와... 우리 진짜 샤또에서 묵는구나!
내가 너무 좋아했더니 버거씨는 나를 마담 샤틀렌(chatelaine)이라고 불렀다.
"샤틀렌이 뭐야?"
"응, 샤또의 여주인이지. 남자주인은 샤틀랑이라고 불러. 여기서 머무는 동안 너는 마담 샤틀렌이야."
"알았어. 무슈 샤틀랑!"
그래 뭐 여기 머무는 동안에는 우리가 주인이지 뭐.
다음날 아침.
샤또 안주인(샤틀렌)으로써의 첫날 아침이 밝았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버거씨는 부지런하게도 동네 블랑쥬리에 다녀왔다. 신선한 빵오쇼콜라와 건포도가 박힌 달콤 고소한 브리오슈를 사 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는 커피 대신에 두유를 마셨고 과일, 견과류 그리고 화이트치즈(프로마쥬블렁)에 망고 퓌레를 뿌려서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은 후 버거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좀 변덕스럽다. 오후에 야외활동을 예약한 게 있는데 제발 비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자에 기대 누워서 책을 읽었다.
잠시 후 나를 찾아 내려온 버거씨가 내 옆에 와서 같이 누웠다.
우리는 수다도 떨고 책도 읽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오후에 우리는 차로 미리 예약한 액티비티 사무실을 찾아갔다.
우리가 예약한 액티비티는 바로, 포도밭 사이를 질주할 수 있는 전동 킥보드였다.
하루에 세 번 세션이 정해져 있길래 단체로 가이드랑 같이 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킥보드만 대여해 주는 거라고 해서 1차로 당황했다. 그리고 킥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우리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사장님은 타는 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신 후 우리가 잘 탈 수 있는지 집 주변을 한 바퀴 돌게 하셨다. 솔직히 우리 둘 다 좀 어리바리하게 탔는데 사장님은 이 정도면 문제없다며 곧바로 찻길로 우리를 내몰았다. 이게 맞는 건가요...? 기어 5단 중에 2단까지만 보셨잖아요...
버거씨는 미리 2시간으로 비용을 지불한 상태였다.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다! 1인당 45유로! 두 명이서 90유로를 지불한 것이다. 심지어 보증금이 1인당 500유로였다고 한다. 버거씨는 사장님께 슬쩍 킥보드 가격을 물어봤는데 한대 값이 4900유로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싼 대여료를 납득하게 되었다.
버거씨는 이날 온종일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려보았다고 한다. 4900유로짜리 킥보드를 스무 대를 사고, 한 달에 몇 번, 비수기 빼면 일 년에 총얼마를 대여해야 남는 장사일까... 유지보수는 사장님이 직접 하시니 비용이 절감될 것이고 한몇 년 운영하다가 중고로 팔면...? 결론은 많이 남는단다ㅋㅋ
잔뜩 긴장한 상태로 우리는 큰 바퀴의 킥보드를 몰아 우선 근처 작은 마을로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곧 비가 후드득 쏟아지고 말았다.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
다행히 빗방울이 굵진 않았다.
그런데 킥보드에 적응을 하고 나니 이 날씨가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처럼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는 날씨였더라면 오히려 더워서 괴로웠을 것 같은데(팔도 엄청 탔을 것 같다!) 보슬비를 맞으며 포도밭 사이를 질주하니 어찌나 기분이 상쾌하던지!!
처음에는 2단까지만 올려도 너무 빠르고 무서웠는데 어느새 우리는 5단까지 올려서 씽씽 달리기 시작했다. 오예!!
특히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빨라지는데 이때는 마치 내가 날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차도 없어서 우리는 맘껏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다.
비 때문에 진흙이 튀어서 킥보드가 금세 엉망이 되었다.
문제는 바퀴에서 튄 진흙이 킥보드에만 튀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
버거씨가 내 뒷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대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웃는지 짐작이 갔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얼 보고 웃었건 간에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해."
검은 바지랑 흰 바지가 같을 순 없지.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웃던 버거씨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더 심하게 웃기 시작했다.
"설사했어?"
이 한마디에 버거씨는 결국 웃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 이런 농담을 좋아하는구나. 그럼 자주 말해줘야지. 설사는 좀 괜찮아? 아직도 그래? 이따 약 사러 가자. 내가 온종일 이렇게 놀려댈 때마다 버거씨는 매번 빵빵 터졌다.
우리는 포도밭뿐만 아니라 예쁘고 한적한 작은 마을들을 몇 개나 지나쳤다.
작은 골목길, 오래된 시골집들, 돌담들을 지나치며 그 아름다움에 여러 번 감탄하고 그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고프로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모든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어느 순간 나는 앞서가는 버거씨를 불러 세웠다. 버거씨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배고파. 먹을 거 있어?"
내 말에 버거씨가 껄껄 웃으며 가방에서 브리오슈 한 조각을 꺼내주었다.
아침 점심을 그렇게 든든하게 먹었으면서 나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한입에 욱여넣고 씹기 시작했다. 버거씨가 얼른 한 조각을 내 손에 더 쥐여주었다. 나는 그냥 빨리 입에 넣고 다시 타려고 그랬던 건데ㅋㅋ
서서 타니까 확실히 속도감이 다르다. 처음부터 5단으로 출발하면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통이 내 팔에 휙 딸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동물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예쁜 집들도 정말 많았다.
두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샤또로 돌아오는 길에 버거씨가 말했다.
"마담 샤틀렌, 피곤하지?"
"아니 안 피곤 해. 무슈 디아헤."
샤틀렌은 샤또의 여주인을 뜻하는 단어이고, 남주인은 무슈 샤틀랑이라고 버거씨가 전날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버거씨를 샤트랑이 아닌 무슈 디아헤라고 불렀다. 디아헤는 설사라는 뜻이다.
버거씨가 운전하다 말고 또 미친 듯이 웃었다. 좋아하는구나.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무슈 디아헤다. 설사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