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월이 되면 낭시에는 산타클로스 대신에 성니콜라스가 오신다. 특히 매년 12월 첫째 주에는 화려한 성니콜라스 퍼레이드 행사가 있는데 올해 나는 처음으로 버거씨와 함께 퍼레이드 구경을 나갔다.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몰려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신나는 길거리 공연을 볼 수가 있었다.
아, 오빠 우리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퍼레이드가 지나는 길에 가서 앞쪽으로 자리를 잡아야 된다고-
헐... 이미 늦었다. 인파가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거기다 엄마, 아빠 어깨에 올라탄 아이들 때문에 시야가 더 막혀있다.
"쟤네는 좋겠다... 아빠 어깨에 탈 수도 있고... 나도 저거 태워 줘 오빠."
물론 나는 장난으로 말한 거였다.
그런데 버거씨가 허리를 숙이는가 싶더니 내 무릎을 끌어안고는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끼약!!!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인파들 머리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내가 제일 높다! 애기들아 내가 더 크지요!! 와하하하 (실제로는 창피해서 빨리 내려달라고 했음)
버거씨는 힘을 좀 아꼈다가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다시 나를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제발...
"실례합니다. 조금만 비켜주세요. 반대편 길가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못 가고 있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표정에서 긴박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한 젊은 여성이 사람들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몸을 앞으로 바짝 붙여서 틈을 만들어 주었다. (앞사람한테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바로 뒤에 서 있던 할머니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진짜로 저기서 일을 하는지 아닌지 우리가 알 게 뭐야? 다들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못 가고 있는 거 뻔히 안 보이나? 왜 자기만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흥!"
그녀는 몇몇 사람들의 협조로 조금 진입하나 싶었는데 이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 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 나왔다. 아이고 딱해라... 그런데 그 할머니는 다시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다. 결국 그녀와 할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할머니가 매정하셨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잠시 후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처럼 세상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버거씨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무슈... 무슈는 키가 크니까 까치발을 안 들어도 잘 보이지요? 호호 뒤쪽으로 가도 잘 보일 것 같은데 말이지요. 나는 키가 작아서 까치발을 들어도 하나도 안 보이거든요."
우리 앞으로 오셔도 어차피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 똑같답니다요... 목마탄 애기들 때문에 시야가 꽉 막혀있걸랑요...
사람 좋은 우리 버거씨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할까 싶어 살짝 긴장하고 있을 때 버거씨는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해요. 여기 제 Ma chérie(여자 친구를 부르는 애칭)는 성니콜라스를 한 번도 못 봤대요. 오늘 그녀에게 성니콜라스를 보여주려고 온 거예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호호 나도 성니콜라스 오늘 처음으로 보러 온 거라오..."
"안 돼요. 저는 Ma chérie가 더 중요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요 호호 그리고 나도 영어는 좀 한답니다. 우리 영어로 대화할까요?" (우리가 영어로 대화하는 걸 들은 것이다)
아무래도 이 할머니 우리 오빠한테 반한 거 같은데.
할머니 우리 오빠가 머리색이 은발이라 그렇지 나이는 보기보다 많지 않아요...
버거씨는 대답할 말을 못 찾은 듯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날 저녁 내내 이 할머니를 떠올리며 웃고 또 웃었다. 상황이 급박했던 젊은 처자한테는 매정하게 큰소리로 빈정거리더니 우리 버거씨한테는 세상 다정하게 호호하는 모습이 너무 상반되었다.)
아! 드디어 멀리서 북소리가 들렸고 퍼레이드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고 나도 그에 못지않게 환호했다.
내가 그렇게나 말렸건만 버거씨는 다시 한번 내 무릎을 안고 번쩍 높이 올려주었다.
그 누구보다 높이 불쑥 솟아오르는 나를 몇몇 아이들이 놀란 듯 뒤돌아보았다. 응 내가 더 크지요~ 우리 아빠, 아니 우리 오빠가 힘이 좀 세단다.
하지만 뒤에 할머니가 신경 쓰여서 곧 내려왔다.
"데졸레 마담"
할머니한테 큰 목소리로 사과를 했는데 이 할머니 진심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눈길을 피했다. 질투하시는 거 아닐까. 버거씨한테만 웃어주고...
퍼레이드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내 몸위로 뭔가가 후두두 날아와서 부딪혔다. 알고 보니 사탕이네?! 아이들이 손을 내밀고 소리를 치고 있었는데 나는 땅에 떨어진 사탕을 주워서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퍼레이드 중간중간에 사탕이 꽤 자주 날아왔는데 앞쪽에서 사탕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뒤쪽 아이들에게 사이좋게 나눠주었다. 착하기도 하지! 물론 가운데에 있는 어른들이 한마음으로 여기저기 전달해 준 것이었다. 신나 하는 아이들 얼굴을 보니 나도 너무 재미있어서 어느새 퍼레이드보다 사탕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탕을 받으면 손을 높이 흔들면서 "봉봉 원하는 사람?!" 하면서 주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면 손을 드는 아이 쪽 방향에 있는 어른들에게 사탕을 주면 그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내 뒤에 있던 네 살쯤 된 꼬맹이가 (아빠 목마를 탄 채) 작은 두 주먹에 봉봉을 가득 쥐고는 신나서 "La fête de bonbon!!"하고 소리를 쳤다. 나도 퍼레이드보다는 봉봉에 정신이 팔려서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사탕축제인거시다ㅋㅋㅋ
충분히 즐거웠고 나는 버거씨한테 그만 가자고 했다. 성니콜라스는 아직 못 봤지만 아이들 덕분에 충분히 즐거웠다. 우리가 자리를 빠져나오자 할머니가 버거씨를 향해 호호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부모님 목마를 타고 앉아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너무 귀엽다.
성니콜라스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저녁에 낭시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 할머니는 성니콜라스를 만나셨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