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일주일 전 버거씨가 말했다.
"회사 동료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우리를 초대했어. 토요일 저녁에 룩셈부르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할 거래."
"아 그래? 그럼 가야지."
"정말 괜찮아? 꼭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말해줘. 열 명 넘게 올 것 같은데 두세 명 빼곤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뭐지? 오히려 본인이 불편해서 내키지 않는 듯한데?
"난 안불편한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거잖아! 나야 좋지."
내 말에 버거씨가 시원하게 웃었다. 나를 아직 모르나...?
버거씨는 이제야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한 명당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래... 10유로가 넘지 않는 선으로."
"그럼 나 가져갈 거 있어! 집에 예쁜 향초 새 거 있는데 가격이 넘기는 하지만 뭐 10유로 주고 샀다고 하지 뭐."
"한 명당 10유로라잖아. 열 명이면 벌써 100유로나 된다고... 너랑 나랑 두 명이면 200유로야."
에?! 이런 통 큰 걱정을 하다니ㅋ
"무슨 소리야! 시크릿산타는 그냥 각자 한 개씩만 가져가면 돼. 제비 뽑기로 하나씩 선물을 받는 거지."
내 말을 듣더니 버거씨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 주최자한테 한 번 더 물어보겠단다 ㅡㅡ;역시 뭐든 확실히 해야 되는 J.
"네 말이 맞았어! 선물 한 개만 가져오면 된대. 그리고 그날 복장코드가 있어. 빨강, 녹색, 흰색을 최소 한 가지씩 착용해야 된대. 정말 같이 가 줄 수 있는 거 맞지?"
"당연하지! 재밌겠다~!!"
나는 그다음 날 시내 옷가게를 몇 군데 둘러보았다. 예쁘게 하고 가서 버거씨 기를 살려줘야지. 옷을 새로 사 본 게 언제더라... 이 기회에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도 좋지.
드레스는 너무 신경 쓰고 나온 느낌일 것 같아서 빨, 녹, 흰색의 상의를 물색했다. 그러다 어느 가게에서 딱 마음에 쏙 드는 얇은 스웨터를 발견했다. 녹색인데 블링블링한 것이 크리스마스트리 느낌이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귀고리를 발견했는데 재미있어서 살까 말까 망설였다. 결국 안 사귈 정말 잘했다. 나중에 파티에서 누군가가 똑같은 귀고리를 하고 나왔더라.
대신에 화려한 링귀고리를 하나 샀다.
파티 전날 저녁 나는 복장을 미리 점검해 보았다. 크리스마스트리 색깔의 상의에 가죽재질의 바지를 입고 굽 높은 앵클부츠를 신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혼자 만족.
셀카를 찍어서 버거씨에게 보냈더니 버거씨 반응이 난리가 났다.
"넌 내일 파티의 주인공이 될 거야. 다들 너만 쳐다볼 거야. 너만 환하게 빛날 거야."
이 맛에 내가 버거씨랑 연애한다ㅋㅋㅋ
파티 당일 낮에 버거씨는 파티에 가져갈 선물로 10유로대 화이트와인을 샀다고 했다. 하지만 입고 갈 옷을 아직 결정하지 못해서 시내 옷가게들을 둘러보는 중이라고 했다.
"나 녹색 귀고리 있는데 그거 빌려줄까?"
내 농담에 버거씨가 노엘 파티 때문에 귀를 뚫기는 싫다고 받아쳤다.
몇 시간 후 버거씨는 콘셉트에 딱 맞는 옷을 사 왔다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보내왔다.
아... 화려한 스웨터... 한가운데 흰 눈사람이 있네...
"음... 정말로 이거 입고 갈 거야...?"
버거씨는 내 반응에 웃기만 했다.
"그냥 초록빛 나는 와이셔츠를 입고 이건 싸가는 게 어때? 다른 사람들 어떻게 입고 왔는지 보고 나서 그때 갈아입어도..."
진짜로 저걸 입고 갈 건가 보다. 웃기만 하네.
다행히 파티 장소에 나갔더니 버거씨 보다 더한(?) 스웨터(배에 눈사람 코 당근이 튀어나온)를 입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정신없이 불이 들어오는 산타 모자를 쓴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다 내려놓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생각보다 유쾌한 파티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편하게 웃고 떠들고 선물도 교환하고... 버거씨의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 되었다.
버거씨를 만난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되는구나.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이제야 깨닫게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