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변호사 상담을 이제야 받았다.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변호사가 갑자기 일정을 미룬 관계로 이제야 화상으로 변호사를 만날 수가 있었다.
젊고 인상이 좋은 여성이었다.
한 시간 정도 상담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원하는 경우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합의이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합의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위자료는 요구할 수 있다며 그 근거들을 나열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버거씨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변호사가 말하는 근거들을 다 수집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혼만 하면 될 것 같다. 충치 났던 내 사랑니처럼 그냥 말끔하게 뽑고 다 잊어버리고 싶다. (이래놓고 나는 그 충치 나서 뽑아낸 못생긴 사랑니를 몇 번이나 꺼내서 들여다보곤 한다. 말 나온 김에 내다 버려야겠네.)
내 비자는 이혼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대신에 이혼 전에 공식적으로 별거상태를 신고하고 새 주소로 신분증을 재발급받으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 절차도 내 눈에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데 위자료 서류 수집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난다. 작년의 그 혼란스러웠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는 건 피하고 싶다. 상담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보니 내 정신 수양이 생각보다 부족했구나 싶었다.
버거씨 말에 의하면 이혼을 하면 세금도 줄고 주택보조금도 다시 받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단다. 그럼 그냥 이혼만 해도 되겠다.
내 심경이 복잡해 보였는지 변호사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이 결혼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그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순간 옆에서 안도하는 듯한 표정의 버거씨 얼굴이 보였다. 내가 가끔 표정 관리가 안되나 보다.
위자료는 필요 없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냥 안 하련다.
돈 좋아하는 당신과 어머님 다 가지세요. 축하합니다.
코인 투자에서 번 돈으로 그는 아파트 가격의 절반을 현금으로 결제했다.
리플가격이 곤두박질치는데 그걸 살 돈이 부족하다고 급하게 빌려달래서 석 달 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태국바트로 빌려줬었다. 작년에 집 나올 때 그 돈이라도 돌려달라고 말했더니 그는 현금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한 달에 400유로씩 보내준다길래 그 말을 어떻게 믿냐 했더니 그는 말했다. 빌린 돈에 대한 내용을 문서로 남기고 싶은 거라면 돈은 절대 못 받게 될 거라고.
그냥 아무 말 안 했다. 싸우는 것도 지겨워서.
문서도 안 만들었는데 그래도 안주더라. 그냥 그거 먹고 떨어져라. 아, 내가 떨어지는 거구나 참. 안 먹고 내가 떨어질게.
우리 엄마가, 우리가 돈이 없어서 결혼반지를 못 사는 줄 알고 반지 사는데 보태라고 주신 돈. 나보다 취향이 까다로우니까 네가 원하는 걸로 고르라고 그 돈도 줬었는데 반지도 안 사고... (내가 결혼반지 사자고 몇 년을 졸랐는데) 그 돈도 리플 사는데 보탰겠지. 얼마 안 되지만 그 돈만은 꼭 돌려받아야겠다. 우리 엄마 돈이니까.
줄줄이 이어지는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다가 조금 서러워서 버거씨한테 하소연하다 조금만 울었다.
버거씨가 없었다면 나는 이혼을 준비할 용기도 못 냈겠지.
나를 위로해 주는 버거씨한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나중에... 고양이 길러도 돼?"
버거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그럼 다 괜찮아지겠다.
무스카델한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