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티옹빌에서의 일요일 아침-
부엌에 내려갔더니 버거씨가 테라스 쪽 문을 활짝 열어놨네?
추운 것 같아서 문을 닫으려고 다가갔더니 웬걸, 날씨가 너무 온화하다! 오히려 실내가 더 추운 거였어...
얼마 만에 보는 새파란 하늘인지!
외투도 없이 나갔는데 해가 따뜻해서 전혀 춥지도 않았다. 올 들어 처음 느껴보는 봄내음이다.
저 말라붙은 초원에도 곧 초록빛이 내려앉겠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버거씨네 뒤뜰 전경이다.
갑자기 꾸엑꾸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두리번거렸는데 잠시 후 내 머리 위로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갔다. 저렇게 높이 날아가는데 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이 마저도 봄날의 아침 활력을 더해주는구나.
이제는 버거씨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러 들어가야지.
한가운데 녹차 티라미수는 전날 시장 일본식당 사장님이 선물로 준거였는데 고이 가져와서 버거씨한테 줬더니 정말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버거씨표 오믈렛도 있다.
파파야, 석류, 견과류, 크림치즈 등등...
크림치즈에 버거씨 어머니표 수제 살구잼을 더해서 맛나게 먹었다.
배불리 먹었으니 우리 산책 나가자!
오늘 날씨가 좋으니까 최대한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게 남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봄이 드디어 시작되는구나.
우와... 오늘 날씨 진짜 좋다...!
하늘 색깔 좀 봐!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동네 산책을 나가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오늘은 특별히 들판으로 산책을 나가보자.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이렇게 흙길을 걸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봄이 되면 들뜨곤 하던 내 어린 시절의 기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버거씨에게도 내 어린 시절 시골 살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아직 개구리알이 나올 시기가 아닌가?
봄이 되면 나는 아빠를 따라 논에 나갔다가 올챙이를 잡으면서 혼자 놀곤 했다. 올챙이를 잡으려고 따라나간 건 아니고 엄마가 가져오시는 참을 얻어먹으려고 간 거였다. 나는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청양고추가 안 들어간 부추전이나 애호박 전을 골라 먹었고 아빠는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마다 불러 세워서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주곤 하셨다. 그때 어른들은 부족한 젓가락은 근처 싸리나무를 꺾어다 껍데기를 벗겨서 쓰곤 하셨다. 나도 싸리나무젓가락으로 먹겠다고 떼를 쓰다가 막상 써보고는 불편해서 다시 내 젓가락을 돌려달라고 말해서 어른들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흙길을 걸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줬더니 버거씨가 큰소리로 웃으며 들어주었다. 리액션이 좋으니까 이야기 들려줄 맛이 나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많지만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이유는 이거야."
"뭔데?"
"넌 정말 웃겨 ㅋㅋㅋ"
아 그래 고맙다.
감사해서 황공하네요.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에 버거씨가 또 빵 터졌다.
"진짜로 나는 태어나서 너만큼 웃긴 사람을 본 적이 없어.ㅋㅋㅋ"
그래... 뭐... 칭찬은 칭찬이니까.
사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언니나 우리 엄마도 한 개그 하셔서 내 개그는 좀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 많이 웃게 한 사람은 없었어. 앞으로도 나 오래오래 맨날 웃게 해 줄거지?"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앞으로도 내 얘기 지금처럼 이렇게 잘 들어주고 웃어줄 거라면 말이지."
와 이런 풍경을 주말마다 볼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내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해 주는 다정한 사람과 손을 잡고 이 예쁜 자연 가운데로 산책을 하고 있다. 비현실적이군.
오 저기 봐!!
사슴 한 쌍이 우리 근처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와 진짜 빠르다...
이 동네 정말 좋은 곳이구나.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이지만 크고 작은 도시들이 가깝다. 버거씨가 왜 이곳을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걷다 보니 너무 더워서 어느새 외투를 벗고 팔도 최대한 걷어붙였다.
"매일매일이 이런 날씨라면... 내가 사랑하는 여름과도 바꿀 수 있겠어."
오랜만에 만끽하는 봄볕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점심때 버거씨는 신선한 샐러드를 먼저 만들었다. 푸릇푸릇하다!
메인 요리는... 작은 오징어라고 말했는데 이건 주꾸미잖아?
야채와 주꾸미를 볶다 말고 버거씨가 비빔밥 소스를 뿌렸다. 잡채소스는 다 썼단다.
비빔밥소스로 볶은 주꾸미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샐러드도 당연히 맛있고!
후식으로 피스타치오 크림을 섞은 요구르트랑 아이스크림에 견과류를 뿌려서 갖다 주는 버거씨. 후식도 항상 정성을 다한다.
오후에 잠시 내 서류를 봐주겠다던 버거씨는, 그 일만 끝나면 한 번 더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안될 거 없지. 이런 날엔 집에 있는 게 손해니까.
특별할 것이 없어도 하나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는 완벽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