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에 여자 친구 자랑을...

by 혜연

금요일 저녁에 아들이 오는 바람에 낭시에 못 온다던 버거씨는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달려왔다.
어차피 나는 일하니까 그렇게 아침 일찍 달려올 필요까진 없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토요일은 가게가 제일 바쁜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주말 가방을 든 채 셔터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안녕~"하면서 버거씨가 등장했다.

"오늘 안토니가 가족들이랑 낭시에 온다길래 꼭 시장에 들러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말해줬어. 내 여자친구가 만드는 닭강정은 최고라고 말이야. 이따 정오에 온 가족 다 같이 밥 먹으러 오겠대. 나도 같이 먹을 거야."

으악...
진짜 온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다닐 작정인가 보다. 낭시에 가면 꼭 시장에 가서 내 여자 친구가 만드는 닭강정을 먹어봐라... 앵무새처럼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버거씨를 어쩌면 좋을까. 뜨악한 내 심정은 알지도 못한 채 버거씨는 강아지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래서 파트라슈라 부른다 내가...)
그래도 뭐 순수하게 여자 친구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근데 시장에서 닭 튀기는 여자 친구가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 거지?ㅋㅋㅋ 하 모르겠다. 아무튼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잘했어...라는 말 외엔 다른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일단 우리 집에 짐을 갖다 놓으러 잠시 돌아갔던 버거씨는 정오에 안토니의 가족들과 함께 나타났다. 안토니의 와이프, 어린 두 딸, 미치도록 귀엽고 순한 검정 시바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낭시에 사는 사촌 두 명도 함께였다.

안토니는 버거씨네 동네 친구다. 룩셈부르크로 출퇴근을 하는 버스 안에서 몇 번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서로의 집에도 초대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버거씨처럼 운동을 좋아하고 금융업에 종사해서 점심시간에 만나 헬스장에 같이 가기도 한다. 사람이 그렇게나 착하다며 버거씨로부터 귀가 닳도록 칭찬을 들어왔다.

버거씨는 본인이 대접하는 거라며 닭강정을 인원수대로 주문하고 음료와 카스 맥주를 주문했는데 결국 계산은 안토니의 와이프가 먼저 해버렸다. 서비스로 김밥을 줬고, 마침 SK생일이라 준비했던 미역국이랑 케이크도 조금씩 맛볼 수 있게 대접했다. (미역국, 맛볼 사람? 했더니 의외로 대부분 손을 들었다.)

다행히 다들 맛있어했고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조만간 우리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했어. 한국식 바비큐를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하더라. 너 시간 될 때 날을 잡고 메뉴도 같이 정해보자."

점심 식사 후 안토니네 가족과 헤어진 버거씨는 미용실에 예약을 해놨다며 이발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봄이라 평소보다 짧게 이발을 하고 돌아온 버거씨는 또 미용사에게 내 자랑을 했던가보다. 미용사랑 수다를 실컷 떨고 왔단다.

"시장 가서 또 닭강정 꼭 먹어보라고 말했지?"

내 말에 버거씨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야...

버거씨의 저 소년미를 내가 참 좋아하니까... 어쩔 수가 없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WvCXa7BeUXL0P%2Bs%2FYmfLrZrhoAc%3D


아침 일찍부터 낭시에 와서 내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준 버거씨.
퇴근하자마자 테라스에서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히며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 주말을 서로 축하했다.

둘 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신 터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취해서 말과 웃음이 많아졌다.

당신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말하지.
나는 당신이랑 있을 때 제일 웃긴 거 같아.


작가의 이전글맛난 가성비 케이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근무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