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조촐하지만 화기애애한 파티를 하던 날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주제는 바로 '구걸인들'이었다.
우리 집 뷰가 너무 좋다며 창밖을 내다보던 엘라가 문득 말했다.
"저기 ATM기계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아랍인 여자 보이지?"
"알지. 맨날 봉쥬! 싸바? 이러잖아."
"응, 맞아. 하루는 젊은 남자 세 명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ATM에서 현금을 뽑았다? 그런 후에 그녀에게 돈을 좀 줬나 봐.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에 뭐라고 말한 줄 알아?"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어?"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돈을 주지 않은 나머지 두 남자한테 너희도 가서 돈 뽑아와라- 이런 거 있지! 나 진짜 깜짝 놀랐어. 저 여자는 출근하듯이 맨날 똑같은 시간에 나오는 거 알지. 그냥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세상 착한 엘라가 혀를 찰 정도였으면 말 다했네.
맨날 지나가는 행인들한테 '봉쥬! 싸바?' 이렇게 크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는 우리 집까지도 들려온다.
작년부터 시내 중심에 살고 있는 나는 점점 더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마트나 빵집 앞에는 아랍인들이 한 명씩 앉아있고 거리에도 걸어 다니며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약에 취한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고 행색이 남루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나는 낭시역 앞에서 약에 취한 남자가 와서 나한테 구걸하면서 이렇게 말했어. '실례합니다 마담, 저는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칫솔인지 모르겠어요' ㅋㅋㅋ"
악 칫솔은 예상 못했다ㅋㅋㅋ 우리는 빵 터져서 깔깔 웃었다.
나는 약에 취해서 혼자 제자리를 빙빙 도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버거씨랑 둘이 어찌나 웃었던지.
아, 이런 경험도 있었지 참!
"전에 살던 우리 집 앞에 와플가게 기억나? 거기 와플이 하나에 4유로나 하거든? 지날 때마다 냄새는 너무 좋은데 비싸서 나는 도저히 못 사 먹겠더라. 근데 그 앞에서 어떤 여자가 작은 강아지랑 같이 오더니 갑자기 나한테 이런다? '실례합니다 마담, 제가 배가 너무 고픈데요, 와플 사 먹게 돈 좀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답도 바로 안 나오더라. 나도 비싸서 못 사 먹는 와플인데! 가죽재킷에 멋들어지게 스카프까지, 나보다 더 잘 차려입었으면서!"
"ㅋㅋ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생각 같아선 저도 와플 정말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기가 막혀서 그냥 미안하다고만 대답하고 말았어."
"ㅋㅋㅋ 우리도 이래 볼까? 마담, 와인이 마시고 싶은데 한 병 사게 돈 좀 주세요...ㅋㅋ"
SK는 아침에 출근하다가 한 남자가 동전 좀 달라고 해서 지갑을 꺼내 동전을 찾고 있었단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갑자기 "지폐 주셔도 돼요."라고 말해서 지갑을 도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우리 가게로 구걸한 동전을 잔뜩 가져와서 지폐로 바꿔달라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일전에는 바꿔주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다 거절한다. 왜냐면 10유로치라고 해서 받아서 세어보면 꼭 돈이 조금씩 모자란다. 모자라는 돈은 동정심으로 채워서 10유로 지폐로 바꿔주길 바라는 것이다. 거절했더니 울랄라~ 고작 10센트 부족한 건데!! 정 없다는 식으로 말하길래 이제는 아예 지폐가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해버린다. (혹시라도 혼자 있을 때 돈통 열었다가 지폐뭉치를 본 구걸인이 변심해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느 날 우리 가게 팁통을 도둑맞은 적이 있는데 며칠 후 문이 닫힌 우리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시장 앞에서 구걸하는 남자였다. 그 후로 우리는 팁통을 없앴다.
아무튼 요즘 거리를 다니면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져서 저녁에 혼자 외출하는 게 꺼려진다. 약에 취한 사람들을 밤에 혼자서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