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시차 때문이겠지.
자정이 훌쩍 넘었는데 잠이 안 온다.
오래된 내 방이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낭시에 있는 작은 내 아파트 침대가 더 익숙해졌나 보다.
엄마는 내 방을 옷방으로 사용 중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내 방은 옷방보다는 창고에 더 가까웠다.
창문에 커튼은 사라져서 빛 차단은 안되고 책상 위에는 낡은 선풍기가 두 대 올라와 있다. 책장 앞에는 식탁 의자 두 개랑 박스들이 쌓여있어서 책을 꺼내기도 어렵다. 불평은 아니고 그냥 낯설다는 말이다.
버거씨는 뭘 하고 있으려나.
프랑스 현지 시각을 확인해 보니 저녁 6시 반이었다. 헤헤 전화해 봐야지. 시차가 이럴 땐 편리하구나.
신호가 단 두 번 울렸을 때 버거씨가 반갑게 받았다.
"어?!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잠이 안 와?"
"응..."
버거씨 목소릴 들으니 참 좋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 저런... 나는 오늘 낮에 첫째랑 헬스장에 다녀왔고 조깅도 10km나 뛰었어."
"와, 안 피곤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안 피곤 해. 너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야. 세상 최고의 여자와 함께 하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지."
하하하 잠이 확 달아났다. 역시 스윗한 우리 버거씨.
그때 멀리서 아빠를 부르는 둘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금 둘째랑 탁구 시합을 하던 중이었거든. 잠 안 오면 내가 자장가 불러줄까?"
"아, 아니야. 돌아가서 탁구 마저해. 나는 자도록 노력해 볼게."
"아 그래?"
"응 그래. 탁구 이기지 말고 져 줘."
버거씨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을 것처럼 하더니 갑자기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프랑스어 자장가였다. 근데 자장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꽤 다급해서 어찌나 웃긴지.
자장가 한 곡을 후다닥 불러준 버거씨는 세상 스윗하게 끝인사를 전해왔다.
"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그 사실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지금은 너로 인해 한국이 밝아졌어."
아... 한국이 너무 밝아져서 내가 잠을 설치고 있나 보다.
안대가 어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