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가족 소풍

by 혜연

2025년 4월


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내가 정한 이번 방문의 테마는, 좀 거창하지만, '화합'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내 친구들은 웃더라. 내가 좀 거룩한 표정으로 말했을 수 있음.)


언니와 엄마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간 전해 들은 가족들의 근황에서 나는 여러 번 갈등을 감지했다. 겉보기엔 여전히 정정하시지만 고령의 연세로 인해 조금씩 오락가락하시는 외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종종 곤란하게 하신다고. 아무튼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엄마와 언니 그리고 할머니 사이에는 서로 억울함 혹은 서운함이 조금씩 쌓여 있었는데 내가 볼 때 그 모든 복잡한 감정에 앞선 것은 단연 애정과 염려였다. 이 세 맏딸들은 분명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 서운해도 결국은 또 남들보다 더 끈끈하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게 더 큰 것도 원인이고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듯하다.


그래, 우리 가족에게는 팀빌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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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유원지에 벚꽃이 만발했으니 우리 봄소풍 갑시다!

할머니가 맨날 노래하시던 김밥을 제가 오늘 싸보겠습니다요.


전날 내가 김밥을 싸겠다고 했더니 언니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김밥재료들을 본인 부엌에서 꺼내주었다. 맛살대신에 나는 오뎅을 사다 볶아서 넣었다. 시금치가 들어갔으면 더 맛났을거인디... 그건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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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김밥은 언제나 맛나다.


사실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집에서는 그리 표현을 잘하는 살가운 막내딸은 아니다.

김밥을 썰다 말고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아빠 입에 큼직한 꽁다리를 한 조각 넣어드렸는데 이는 나에게 있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아빠가 노력하시니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아빠 차를 타고 유원지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할머니 댁에 들러서 할머니를 픽업했다.

샤워를 막 마치고 젖은 머리를 털며 급하게 나오셨다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꽤 상기되어 있었다. 소풍이라는 말에 정말 들뜨신 것이다.


근데 여러분, 준비한 건 김밥밖에 읎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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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곳에 대체 얼마 만에 와 본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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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 유치원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왔는지 아이들이 둘러앉아 김밥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거만 봐도 나는 웃음이 났다. 이래서 나는 봄이 제일 좋다. 어릴 적 봄소풍을 가는 날 아침 가방 속 김밥 도시락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은 우리도 김밥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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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어르신(할머니, 엄마, 아빠)을 벤치에 앉혀두고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혼자 넓은 유원지를 한 바퀴 돌았다. 소풍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다들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우리 집 무뚝뚝한 세 어르신도 비록 표정들은 하나같이 뚱하셨지만 속으론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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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고 눈부시다.

마침 하늘도 새 파랗다. 오늘 정말 날을 잘 잡았구나!


딱 좋은 자리를 찾은 후 우리도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과자랑 컵라면을 갖고 뒤늦게 도착한 언니도 곧 우리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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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소풍이다!


5년 만에 먹는 내 김밥. 다들 좋아해 주셨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김밥이 최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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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씨가 사준 피스타치오 크림을 크래커에 듬뿍 발라서 하나씩 나눠줬더니 다들 맛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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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건 많지 않지만 김밥에 주스 컵라면까지 뭐 있을 건 다 있다.

오늘 누구보다 즐겁고 흡족하신 할머니께서 헤헤 웃으시며 큰소리로 입을 떼셨다.


"오늘은 금자가 표정이 좋네. 막내딸이 와서 좋은가 봐. 평소엔 너네 엄마 저렇게 잘 웃지 않았거덩."


불만인 듯 만족인 듯 불만 같은 만족의 표현.

김밥을 입안 가득 물고 계신 엄마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할머니와 엄마는 서로에게 서운했던 사건들을 앞다투어 나한테 고자질하셨고 나를 포함해서 언니와 아빠는 이미 다 들었던 내용들이지만 다 들어주고 장난처럼 두 사람을 놀리기도 했다.


인생 무거울 거 있나요.

그냥 이렇게 가볍게 웃으면서 털어냅시다요.

제일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면 내가 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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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무뚝뚝한 우리 아빠랑 할머니는 이제 먹을 거 다 먹었다며 사이좋게 일어나셨다. (연세가 들수록 외할머니랑 아빠가 점점 베프가 되는 듯하다.) 아빠는 조금 전에 개똥을 밟았다며 앞장서서 할머니를 개똥프리존으로 안전하게 안내하며 떠나셨다.


우리 엄마는 고맙게도 마지막까지 두 딸과 함께 해주셨다. 알고 보니 그냥 낮잠 자느라 안 가신 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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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드신 후 눈부신 벚꽃나무 아래서 깊은 꿀잠.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마침 버거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나는 "우리 엄마 보여줄게!" 라며 이 모습을 비춰주었다.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버거씨가 빵 터졌다. 낮잠을 깊이 주무시는 엄마를 향해 버거씨가 첫인사를 힘차게 외쳤다.


"엄마 안녕!"


생각지 못한 버거씨의 반말인사에 내가 또 빵 터졌다. 그거 아니라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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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화합을 위한 봄소풍.

오늘 그래도 꽤 성과가 있었다.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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