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의 그림(?) 자랑

by 혜연

2025년 4월


부모님이랑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할머니셨다. 짧게 통화를 끝내신 엄마가 슬며시 웃으며 말씀하셨다.


"지금 할머니 오신대. 그림 그린 거 갖다 주러."

"그림? 할머니가 그림을 그려??"

내 말에 엄마랑 아빠는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으셨다.

"응. 온 식구들 한 권씩 다 줬어. 삼촌들도 언니도 나영이도 전부 다 받았어. 내일 줘도 된다는데 지금 당장 줘야 된다고 오신단다. 에혀"

할머니가 그림을?!
그래, 인스타에서 보니 어떤 할머니는 80 넘어서부터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들이 참 예뻤는데 우리 할머니도 뒤늦게 소질을 찾으신 건가?
내가 속으로 이런 기대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서랍 어딘가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오셨다.

"자, 우리도 한 권 받았다. 할머니 그림 구경해 봐라."

앗! 이건 그린게 아니고 색칠공부 자나요ㅋㅋㅋ


곧 할머니께서 현관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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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려놓은 그림이 참 많았는데 애들이 와서 다 갖고 갔나 봐. 내가 그리기만 하면 끝나기가 무섭게 다 들고 간다니까? 이거 한 권밖에 안 남았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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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꺼내놓으신 거랑 새로 들고 오신 거랑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내가 대충 넘겨봤더니 할머니는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셨다.

"다 봤나? 한 장 한 장?"

아, 나는 다시 주워 들고 한 장 한 장 자세히 훑어보았다.

"내가 그렸지만 참 잘한 거 같애. 내가 봐도 잘 그렸어."

할머니는 정말로 이걸 그림이라고 표현하셨다.
사회복지사가 다녀갈 때마다 한 권씩 갖다 줘서 시작하신 건데 너무 좋아하셔서 언니도 몇 번 프린트를 해서 갖다 드리고 색연필도 사다 드렸다고 한다.

"맞아, 진짜 잘했네. 너무 예쁘다."

"응. 나도 내가 이런 거 잘할 줄 몰랐그등? 복지사가 올 때마다 놀래잖아. 다른 노인들은 이렇게 못 그린대. 내만큼 그리는 이가 없다고 맨날 볼 때마다 깜짝 놀랜다?"

음... 나이 들면 색칠공부도 어려워지는 건가.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너무 뿌듯하게 말씀하셔서 나와 부모님은 열심히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해 드렸다.

"할머니 여기 밑에다 사인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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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을 건네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신중하게 사인까지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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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할머니의 그림 자랑은 계속되었다ㅋㅋㅋ

내가 한 장 한 장 자세히 봤다고 말씀드렸지만 굳이 한 장씩 넘기시면서 다시 보여주신다.
프랑스 갈 때 들고 갈 거냐고 물으시기에 그럴 거라고 말씀드렸다. (막상 짐을 쌀 땐 기억도 안 났음;; 쏘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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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다른 이야기 화제를 꺼내도 할머니는 오로지 본인의 '그림'들만 쳐다보셨다.

"여기는 색깔이 좀 부족하네... 나 이거 다시 들고 가서 그려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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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빵 터졌고 엄마는 다시 안 그려도 된다고 이미 완벽하다고 말리셨다.

아 울 할머니ㅋㅋ 표정만은 베테랑 화백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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