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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Sep 08. 2020

프랑스에서는 바게트로 싸운다며?

"그럼 너네는 김치로 싸우냐?" "응."

2019년 7월 18일


자서방은 브로콜리를 안 먹는다.

맛있는 음식에 브로콜리가 들어가 있으면 그것만 빼고 먹는다.


점심때 시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볶음면 요리에는 브로콜리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내심 자서방 접시에 내가 작은 브로콜리들을 슬쩍슬쩍 담아보았지만 반응은 역시나였다. 자서방은 자기 접시에 있던 브로콜리와 통마늘을 죄다 골라내서는 내 접시로 옮겨주었고 나는 그저 자서방을 한번 흘겨준 후 말없이 다 먹어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장 보러 가시는 시아버지를 함께 따라나서며 내가 잔소리를 조금 했다.


“참내, 브로콜리도 안 먹고 마늘도 안 먹고... 몸에 좋은 건 다 안 먹을 건가 봐? 영원히?”

그랬더니 시아버지의 차에 오르려던 자서방이 멈춰 서서는 당랑권 비슷한 웃긴 자세를 하고서 나를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싸우자! 이거 프랑스 격투기 자세야. 알겠어?”

“하하 뻥치시네, 프랑스에 격투기가 어딨어? 입으로 싸우다가 와인에 취하면 다들 바게트 꺼내서(등에서 칼 꺼내는 시늉) 이렇게 (휙휙 칼싸움하는 시늉) 싸우는 거겠지. 마카롱도 던지고 (슝슝 던지는 시늉). 프랑스 갱스터들 떠나고 나면 길거리에 막 바게트들이 흩어져 있다며?? 뉴스에서 몇 번 봤어.”

“하! 너 그거도 인종차별이다! 아빠, 지금 얘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차 문을 열고 올라타시려던 시아버지께 자서방이 프랑스어로 막 일러준다.


“프랑스에도 격투기 있다고 말했더니, 프랑스는 바게트로 때리고 마카롱 던지면서 싸우는 거 아니냐고 하네요!! 참나!”

무뚝뚝하신 우리 시아버지 안 웃으실 것 같더니 찐 웃음보가 터지셨다. 으크크크크하시면서 말이다.


차가 마트를 향해 출발했는데도 자서방은 여전히 식식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고 마침내 내 휴대폰으로 위키피디아 링크를 하나 전송해 주었다.

 


 

“자 이제 사과하시지”


"위키피디아에 정보가 이게 다야? 그냥 한 줄인데? 사바트는 프랑스의 격투기이다."


"사과하는 데는 한 줄이면 충분하지"


"방 굽다가 싸우던 게 발전된 건가 봐?"

마트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있는 빵집에 바게트가 엄청 많다. 그걸 보고 내가 또 웃음이 났다. 나를 노려보고 있던 자서방에게 말했다.


"나랑 싸우고 싶으면 가서 하나 뽑아오든가."


시아버지께서는 바게트는 딱 한 군데 빵집에서만 사 오신다. 사 오셔서 이렇게 같은 자리에다 항상 걸어 두시는데 이날부터 나는 자서방이랑 티격태격할 때마다 저기 가서 바게트 꺼내와서 싸우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때 억울했던지 자서방이 시어머니께 나의 만행을 고자질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내편을 드시며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셨다.


"맞다 맞아! 프랑스인들은 싸울 때 한 손에는 와인병 또 한 손에는 바게트를 들고 이렇게 싸우지!"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계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곧 뭔가 대단한 것이 떠올랐다는 듯 자신 있게 한마디 하는 자서방.


"그럼! 한국인들은 김치 던지고 싸우냐?"


"응."

"너 그거 인종차별이다!"


"브로콜리나 드시지."


바게트만 보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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