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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6. 2020

시어머니의 인턴이 되었다.

"매일 요리와 프랑스어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는 꽤 결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매일 요리와 프랑스어를 가르치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하루에 한 가지씩 요리를 가르쳐 줄 거고 프랑스어 수업도 매일 할 거다.”


“프랑스어 수업은 하루에 얼마나 하나요?”


“십분.”


“네. 그 정도면 저도 좋아요!”

이렇게 나의 시댁 인턴생활이 시작되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손님들이 방문할 때나 지인들과 전화통화를 하실 때마다 요즘에 인턴이 된 며느리에게 요리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중이라며 즐겁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예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부엌으로 오라며 나를 부르셨다.

"요용!!"


그럼 나는 요리책과 펜을 들고 쌩- 달려가야 한다.


자서방이 지금 나랑 같이 뭘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려도 안 통한다. 우리는 모두 이 집의 일인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가르쳐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모두 불어로 설명하시는 데다 요리책까지도 불어로 되어있다. 게다가 말씀은 또 어찌나 빠른지...


열심히 한글로 메모를 해 가면서 배웠다. 한 번은 급한데 내 볼펜이 안 나오는걸 멀리서 지켜보던 자서방이 얼른 달려와서 샤프연필을 갖다 주기도 했다.



뭐 그래도 여차저차 키쉬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어 보니 굉장히 뿌듯했다.


시어머니께서 시키시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식사 때마다 내가 혼자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다며 치켜세워주셨고 그 말을 들은 시아버지와 자서방 역시 나에게 고맙다, 맛있다는 인사를 하곤 했다. 특히 내 눈치를 보는 자서방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쳐 주고 맛있다며 더 많이 먹곤 했다. 더 많이 먹지 마-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나를 불러서 요리책을 펼치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오후에는 야채를 찌는 걸 가르쳐주겠다."


오전 내내 프랑스어 수업인지 요리수업인지 모를 혼합 수업에 아직도 머리가 혼미한 상태라 나는 감히 강하게 반발했다.


"아니죠. 그건 내일 해야죠. 오늘 오후에는 이미 피자를 만들기로 했잖아요. 그러니까 야채 스팀은 내일 해야죠! 하루에 한 가지씩이니까요."


자서방이 저쪽에서 나를 쳐다보며 따봉을 날리고 있었다.


나 좀 흥분했거든...


시어머니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오후에는 피자만 만들자. 스팀은 내일."


용기를 얻은 나는 한마디 더 했다.


"오늘 프랑스어도 너무 많이 했어요. 요리하는 내내 십분 넘게 불어로 말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럼 내일은 프랑스어 빼주세요!"


"그건 안된다."


"넵."


자서방 옆으로 돌아왔더니 자서방이 말했다. 시도는 좋았다고...      





어느 날은 시차 때문에 잠을 설치고 오전에 11시가 다돼서 내려왔더니 시어머니께서 혼자서 만두를 빚고 계셨다.


“저 기다리지 그러셨어요.”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수업은 없는 걸로 하자. 일요일은 쉬어야지.”

“남편, 들었어? 축하해줘! 나 오늘 수업 없대!!"

앞에 시어머니가 계신데도 나는 큰소리로 꺅꺅거리며 환호를 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같이 만두를 만들었을 때 시어머니의 삐뚤빼뚤 못난이 만두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혼자 연습을 많이 하셨는지 나보다 더 예쁜 만두들을 빠르게 빚으신다.

그리고 이제는 교자라고 안 부르고 만두라고 부르신다. 자서방이 항상 옆에서 강조한 덕분이다. 뭐 지금도 한 번에 생각 안 나셔서 종종 만구맨구민두만두 이러시지만-


만두를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나눠주시는 걸 좋아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며느리가 한국인이라서 며느리에게서 배운 거라고 자랑하신다. 저는 자서방한테서 배운 건데요....


그날 오후에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다 같이 보다가 시어머니께서 당근을 한 봉지 가져오셔서 껍질을 깎기 시작하셨다.


"제가 할게요."


"아니. 일요일이잖니."


"넵."


나는 역시 거절을 잘 못한다.  


"화요일에 사이공 갈 건데 김치 사다 줄까?"


사이공은 이곳 베트남 식료품점인데 한국식품들도 많이 있다.


"아니에요. 냄새나잖아요. 전 나중에 만들어 먹으면 돼요."


"너 좋아하잖아. 우리는 괜찮아."


옆에서 자서방이 거들었다.


"나도 몇 번 사다 준다고 했는데 싫대. 우리 와이프 정말 까다로워."


솔직히 시댁에 있는 동안 시어머니 음식 대신 나 혼자 김치나 김을 꺼내서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시어머니는 휴대폰으로 김을 검색해서 보여주시며 "그럼 이거 사다 줄까?"라고 하셨다.      


"아니에요. 저 지금 이곳에서 먹는 모든 음식들이 맛있어요. 한국 음식은 나중에 먹어도 돼요. 지금은 시어머니 음식이 더 좋아요."


시어머니의 음식들은 진심으로 다 맛있다.


시어머니께서는 영 개운하지 못한 표정으로 그저 알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스스로 제법 좋은 대답이었다고 생각했다.


시댁에서 지낸 3개월을 떠올려보면 시어머니 덕분에 낯선 프랑스에 정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리와 빨래를 모두 도맡아서 해 주시면서도 내가 빨래 너는 걸 도와드리면 항상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 자서방을 살 찌운 주범인 맛있는 시어머니의 음식들도 큰 호강이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아파트로 우리가 이사를 나가기로 결정했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나더러 매일 저녁 냄비를 들고 음식을 받으러 오라며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다행히도 나는 이제 시어머니께 배운 덕분에 자서방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혼자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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