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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6. 2020

프랑스어는 어려워!

욕도 배워야 한다는 시어머니. 사랑합니다!


자서방과 시어머니는 일상 속에서 나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기 위해 항상 애쓰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큰 차이가 있다. 

자서방은 항상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고, 더 쉬운 단어들을 선택해서 반복해서 말해 주고, 또 내가 더 많이 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반면 시어머니께서는 말씀도 빠르시고 대부분 혼자 할 말을 다 하신다. 내가 이해 못했다고 말하면 그냥 영어로 다시 말씀을 해 주신다. 

자서방은 항상 시어머니께 그러지 마시라고 진지하게 당부를 드리곤 한다. 나랑 대화할 때는 천천히 말해주고 쉬운 단어들을 선택하고 또 내가 천천히 말하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시라고 말이다. 그걸 하도 강조를 하다 보니 시아버지께서도 이제는 쉬운 문장들로 나에게 말을 걸어주신다.



       



코로나 봉쇄기간 중 시어머니께서 나더러 마트에 가자고 처음 말씀하셨을 때 나는 좀 망설였었다. 워낙 프랑스에 확진자가 많기 때문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혹시 샤워 안 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은 마트에 가는 게 겁나는 거니?”

프랑스인들은 샤워를 안 한다는 근거 없는 말을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그걸로 농담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옆에 있던 자서방이 프랑스어로 내가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말해주었다. 

“통계에 의하면 74%의 프랑스인들은 매일 샤워를 해.”

프랑스어로 숫자를 세는 건 여전히 짜증 난다. 74를 프랑스어로 말하려면 60+14로 말하기 때문이다. (94였다면 40x2+14라고 표현한다. 대체 왜!!!) 


숫자 때문에 내가 잠시 버벅거리고 있는 동안 시어머니께서 불쑥 영어로 74%라며 알려주셨다. 자서방은 인상을 쓰며 내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며 시어머니께 차라리 다른 데로 가시라고 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내 프랑스어 수업에 매우 관심이 많으시므로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자서방은 계속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있어갔다.

“그러니까 매일 샤워를 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은 26% 라는 거지. 이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수치야.” 

자서방은 영어와 어떻게 비슷한지 아주 잘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퍼센트를 불어로 말하는 방법을 제대로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자서방은 프랑스인들이 역사 때문에 지금까지도 샤워에 대한 오해를 받고 있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요즘 자서방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티브이를 보시다가 “데귤라스!!!” 하고 격하게 소리를 치시길래 내가 그거 무슨 뜻이냐고 물었는데 자서방은 그런 말은 알 필요가 없다며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구글 번역기를 돌리신 시어머니의 핸드폰으로부터 한국인 남자 성우의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겨운.” 

아하! 

시어머니께 배운 유용한(?) 프랑스 욕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가 그렇게 추가되었다. 쀼땅, 삭까멜, 그리고 데귤라스까지...      


나는 좋은데 자서방은 시어머니께 불평했다.


“제발요... 쟤는 안 좋은 말은 한 번만 들어도 안 잊어버린 단말이에요.” 

사실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나쁜 말은 절대 안 잊히는지. 


나는 그 후 티브이를 보거나 혹은 내가 뭘 쏟을 때 “데귤라스!”를 나직하게 외친다. 시어머니께서 칭찬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루는 저녁식사로 병아리콩 카레와 밥 그리고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먹던 날이었다.



밥을 접시에 담아주시던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역시 내가 만든 밥이 최고야!” 


“오늘은 밥 와이프가 안 하고 엄마가 하셨어?”

자서방의 물음에 나는 허공을 쳐다보면서 더듬더듬 프랑스어로 열심히 대답했다. 내가 말이 느릴 때마다 짓궂은 자서방은 하품을 하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친다. 근데 나는 그게 또 웃겨서 웃느라 대답이 더 느려진다.       


“내가.. 하겠다고 말했는데.. 그녀가.. 안돼.”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허락이 프랑스어로 뭐더라... 뻬흐미...?

이래저래 세상 느리게 단어들을 갖다 붙이는 동안 온 식구들이 식사 중에 숨이 넘어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역시 성격 급하신 우리 시어머니께서 후다닥 내 문장을 대신 완성시켜주셨다.


"휴우... 네, 그 말이었어요!" 

그러자 자서방이 시어머니께 다다다다 잔소리를 시작했다. 내가 배운 단어들을 떠올려서 스스로 문장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냐 뭐 그런 내용이었고 마음이 상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에게 “넌 메샹이야”라고 하셨다. 

“메샹이 뭐예요?”

뭐더라... 분명 들어봤는데... 아... 가물가물


자서방을 쳐다봤으나 대답을 안 해줬다. 그때 시아버지께서 웃으시며 천천히 말씀해 주셨다. 

“이스탄불이 가끔씩 모웬한테 메샹하지.” 

아하! 요즘 이스탄불이 모웬한테 심술을 자꾸 부리던데...

“나쁘다는 뜻이군요!”

시아버지는 “그렇지!” 하고 대답해 주셨다. 배운건 바로바로 써먹어야지. 나는 옆에 있던 자서방에게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


“너, 메샹!”      

이스탄불이 가끔 모웬에게 메샹한 짓을 한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자서방이 오더니 나를 거칠게 끌어당겨서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야릇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메샹하다고...? 내가 진짜로 메샹한거 보여줄까...?” 

“음... 메샹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검색 먼저 해 보고 대답해줄게. ” 

메샹: 심술궂은/ 악독한/ 냉혹한/ 행실이 나쁜...  

그래 오늘 메샹한 자서방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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