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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8. 2020

시댁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

"우리 하루만 더 자고 가자."

우리 부부는 이미 전날 새집으로 이삿짐을 모두 옮겨놓았지만 다음날 집 정리만 어느 정도 마친 후 다시 시댁으로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위해서 돌아가게 되었다. 마지막 밤을 시부모님과 하루 더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새 집에서 잘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시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며 우리를 맞아주셨고 이럴 거면 그냥 계속 같이 살자고 하셨다.


거실에는 샴페인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베르나르 아저씨께서 오늘은 방문 전에 미리 연락을 주신 모양이다. 매번 연락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셔서 시어머니께서 잔소리를 자주 하셨다. 그만큼 친하신 분이시다.


이스탄불이 제일 먼저 왔구나!      


자서방은 지하실에서 소테른 와인을 한병 꺼내와서 우리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자고 했다. 


잠시 후 베르나르 아저씨의 아내분도 오셨는데 나는 처음 뵙는 분이었다. 이것저것 우리 부부에 대해 관심 있게 많이 물어보셨다. 나더러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셨는데 내가 농담으로 요즘에 고양이들을 돌보며 지내느라 매우 피곤하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싸늘해져서 당황했다. 자서방이 옆에서 나 대신 나의 이전 경력을 설명해 주었고 요즘에는 블로그나 글쓰기를 하며 지낸다고 말해 주어서 어찌나 고맙던지... 다음에는 나도 쓸데없는 농담은 하지 말고 저렇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위층에 가시더니 포토북을 몇 권 가져오셨는데 그중에는 내가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가족 앨범들을 보면서 나는 너무 감동을 받았다. 앨범마다 내 사진이 어찌나 많은지... 심지어 시부모님께서 찍으신 처음 보는 내 사진들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 결혼식 앨범을 내가 분명 만들어서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본인께서 새로 하나를 더 만드신 것을 보고 시어머니께서 그 날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시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모든 손님들에게 그리 하셨을 것처럼 사진 한 장 한 장을 설명해 주셨고 우리 친정 식구들까지 일일이 손님들에게 소개를 하셨다.


베르나르 아저씨네가 떠나시고 잠시 후 우리는 테라스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식전주에 취해서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알딸딸한 정신에 헛소리를 자꾸 했다. 


"전 취했어요. 그만 먹어야겠어요. 음... 다들 식사하시는데 즐거우시라고 제가 노래나 한곡 할까요?" 


"그래, 그거 좋구나."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자서방이 싫다고 말려 주어서 노래는 접었다. 안 말려주었다면 정말로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께서는 일부러 작별인사 비슷한 멘트들은 모두 차단하셨다. 바로 코앞으로 이사 가면서 그것도 작별이냐고 하셨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는 우리 부부를 위해 다음날 잊지 말고 챙겨갈 목록들도 한번 더 강조하셨다. 


"내일 아침에 냉동실에서 가염버터 꺼내가는 거 잊지 말고, 베개는 내가 주문한 게 아직 안 왔으니 너희가 여기서 쓰던 걸 우선 가져가거라. 잼이랑 토마토소스도 더 담아놨으니 잊어버리지 말고."


"네. 아참, 수건도 몇 개 가져갈게요."


친정엄마도 아닌데 시어머니께 이렇게 편하게 요구를 하는 내가 스스로도 놀랍다.


나는 살짝 취한 정신으로 정원에 내려가서 고양이들이랑 놀았다. 그리고 테라스에서 여전히 식사 중인 가족들의 모습을 열심히 눈에 꼭꼭 담았다. 


마지막 저녁식사가 끝나고 시부모님께서 잠자리에 드실 때까지도 자서방은 날이 좋으니 조금 더 테라스에 앉아있자고 했다. 우리 둘은 진한 장미향기가 가득한 테라스에 남아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양이들도 우리가 자러 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내일부터는 진정한 프랑스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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