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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Nov 11. 2020

시어머니의 요리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너를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020년 10월 20일


며칠 전 밤 열 시가 다 되어갈 무렵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자니? 오늘 하루 어땠니?” 

아침 일찍 출근하는 자서방 덕분에 우리가 10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걸 알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 메시지를 보니 시어머니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했다. 

별 의미 없는 안부를 서로 주고받은 후 시어머니께서 오늘 구운 밤 케이크이라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우리끼리 다 먹으려다가 너 주려고 남겼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밤 케이크이지!"

"와, 정말 맛있게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래도 서울에다 가게를 차려야겠구나!" 

"네! 좋은 생각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은 게 너무 안타까워. 그런 도전을 하기에 나는 너무 늦었지. 몸에 기운도 약해지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는 점점 더 자신이 없단다. 그저 내 가족과 이웃들이 내가 만든 케이크를 좋아해 주는 걸로 만족하며 살뿐이지... 너를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건강하시잖아요. 그리고 그 케이크들을 가장 좋아하는 건 저랍니다! 아마 먹는 것도 제가 가장 많이 먹을걸요?" 

"그렇지 그렇지. 내가 더 늙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레시피들을 너에게 모두 가르쳐주고 싶단다.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지." 

"네 그럼요. 당연히 원해요!"

"그리고 실은 내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요리책을 내는 걸 준비해 왔단다. 그런데 네가 도와준다면 한국어로 된 요리책도 만들어 보고 싶어. 그건 그저 꿈일 뿐이야. 우선은 내가 건강할 때 너에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레시피를 가르쳐 주고 싶단다. 그 작업들을 하다가 내가 운이 좋아서 오래오래 건강하다면 언젠가는 출판도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니."

"네!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 요리수업은 언제부터 하면 좋겠니? 네가 괜찮은 시간으로 고르렴."

"내일 어때요? 오후에 갈게요!"

"그래, 그럼 내일 우리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보기로 하자! 내가 재료는 미리 준비해 놓으마!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마들렌도 만들어보자꾸나! 대신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하나도 안 남기고 너에게 모두 줄 거야. 내 뱃살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지!"
  

시어머니께서는 맛있는 요리를 하실 때마다 농담처럼 서울에 가게를 차려야겠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런데 요리책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시어머니와 기분 좋은 대화가 끝난 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자서방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자서방은 다른 건 관심 없이 듣는 것 같더니 유독 초콜릿 케이크이라는 소리에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반응했다. 

내가 올해 봄, 시댁에서 지내던 3개월 동안 시어머니께서는 농담 삼아 나를 인턴이라고 부르시며 매일같이 요리를 가르쳐 주셨었는데 이렇게 우리의 요리 수업은 다시 시작이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꽤 마음이 들뜨시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이 요리수업의 최대 수혜자는 자서방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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