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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Nov 22. 2020

시어머니께 배운 훈제 돼지 찜

"네가 와서 무거운 걸 들고 가느니 내가 들고가는게 더 간편하지."

2020년 11월 14일


어제저녁에 시어머니께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너희 돼지 훈제 등심(l’échine fumée de porc) 먹을래? 질 좋은걸 사다 놨거든." 

봉쇄기간이라 살짝 망설였지만 솔직히 먹고 싶었다.


"네! 내일 오후에 제가 가지러 갈게요." 

"그래라. 오면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내가 보여주마." 

하지만 오늘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가는 대신에 본인이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게 더 간편할 것 같다면서 말이다. 뭐가 더 간편한 걸까...

오후에 우리집으로 오신 시어머니께서는 고기 한 덩이만 가져오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요리 재료와 기구들을 잔뜩 어깨에 둘러매고 오셨다. 감자 한팩, 베이컨, 양파, 대파, 그리고 채칼과 엄청나게 무거운 주물냄비까지...!


"저희도 양파랑 감자 많은데 뭐하러 가져오셨어요. 그리고 냄비는 새 걸로 똑같은 거 하나 주셨잖아요. 감자는 이 많은걸 모두 사용하나요?" 

시어머니께서는 별말씀 없이 바로 요리에 돌입하셨다. 


오늘은 요리 수업이 우리 집에서 열리는구나. 



우선 베이컨을 주물 냄비 바닥에 깔고 양파, 감자를 채칼로 슬라이스 해서 깔기 시작하셨다.      



엄청난 양의 감자가 들어갔다. 



이곳에는 감자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나는 빨간색 감자를 주로 먹는다. 구워 먹고 튀겨먹고 부쳐먹고 퓌레까지 모두 가능하다. 색이 너무 예쁘다. 



훈제 고깃덩어리는 내가 옆에서 얇게 잘랐다. 냄비 맨바닥에는 베이컨을 깔고 감자, 양파, 고기, 감자, 양파, 고기 이런 식으로, 마치 라자냐처럼 층층이 재료들을 쌓으셨다. 

그리고 간간히 대파도 추가하셨다.



맨 위에는 남은 감자를 모두 수북이 덮으셨다. 



시어머니께서 엄청나게 무거워진 무쇠냄비를 기합소리와 함께 번쩍 들어서 오븐으로 넣으셨다. 

"자 170도로 두 시간을 익혀야 한단다... 그리고 한 시간이 경과되었을 때는 냄비를 꺼내서 확인을 해야 해. 야채에서 나온 수분을 가운데로 좀 끼얹어주고 혹시 수분이 부족한 모습이면 물을 조금 부어주고..."



알자식 요리라고 하셨는데 시어머니께서 종종 하시는 요리라 나도 꽤 자주 먹어보았다.


시어머니와 잠시 앉아서 콜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이제 이 요리 혼자서 할 수 있겠지? 이걸 우리 집에서 만들었다면 너는 저 무거운 무쇠냄비를 들고 돌아와야 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오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한 거란다. 내가 다음에 농장에 가면 훈제 돼지고기를 사다 줄 테니 그때는 혼자서 직접 만들어 보렴."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무거운 걸 들고 돌아오는 게 걱정돼서 차라리 본인께서 무거운 걸 들고 찾아오시는 걸 선택하신 거였다. 아이고...


시어머니께서는 무스카델과 좀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뒤 금세 쿨하게 떠나셨다. 집에 있던 주물냄비를 사용하는 바람에 가지고 오신 주물냄비는 도로 매고 돌아가셨다. 하나도 안 무겁다며 웃어주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이 주물냄비들을 매우 아끼신다. 절대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시어머니께서 떠나신 후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이런... 이걸 두고 가셨구나. 항상 내가 시댁에 갈 때마다 "내 전화기 못 봤니?"라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나는 휴대폰을 들고 잽싸게 달려 나갔다.


바로 옆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이미 집으로 가셨다가 다시 나오고 계셨다. 손에는 샐러드 한 봉지를 들고서. 

손을 흔드는 나를 발견하시더니 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내가 또 전화기를 놓고 왔지? 내가 정신이 이렇단다. 자! 이건 마쉬 샐러드다. 이미 내가 세척까지 했으니까 저녁에 바로 먹으렴." 



시어머니 덕에 우리의 저녁상은 아주 푸짐했다. 


감자가 더 부드러워지도록 오븐에서 총 3시간을 익혔는데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자서방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1편을 틀어주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랑 맛있는 요리를 하느라 오늘 수고했으니까, 영화 보고 있으면 내가 차려 올게."

집에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솔직히 주물냄비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오븐에서 꺼낼 엄두도 안 났다.



양이 너무 많아서 자서방이 두 접시나 먹었는데도 3/1밖에 못 먹었다. 시부모님도 불러서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고기- 나이프가 필요 없고 포크로도 고기가 쉽게 잘라졌다. 고기에 머스터드를 찍어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그리고 곁들여 마신 와인도 풍미를 더해 주었다. 

사진을 찍어서 시어머니께도 보내드리고 감사를 드렸다. 


내가 할 줄 아는 프랑스 요리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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