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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Nov 27. 2020

무조건 통하는 남편의 화해법

나는 먹는 거에 약하다.

2020년 8월 21일 


귀한 주말에 우리 부부는 살짝 다투었다. 

발단은 이랬다. 어제저녁 도하에 사는 친구 가족들과 오랜만에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느라 자서방은 나와 저녁을 함께 먹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자서방이 좋아하는 치킨 크림 파스타를 해 놓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서방은 한 시간 반동안이나 통화를 하며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고 나는 결국 불어 가는 파스타를 혼자서 먹었다. 한참 후 통화를 끝내고 나온 자서방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저녁은 안 먹겠다고 미리 나에게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또 나는 서운해서 그런 말을 언제 했냐, 정확히 말해줬어야지 하고 쏘아붙이고는 그대로 혼자 자러 들어가 버렸다. 


사실 낮에 그 친구들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를 저녁이 되어서야 확인을 한 자서방은 그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지금은 식사 중이니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는 끊었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식사를 하게 된 시간에 전화가 왔는데 자서방은 그들이 했던 것처럼 통화를 미루지 않았고 내 파스타가 불도록 통화를 계속한 것이 나는 서운했다. 


방콕에 살 때 자서방에게는 프랑스인 베프가 두 명이 있었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그렇게 셋이서 수년간 어울려 다니다가 그 둘은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나와 자서방이 결혼을 한 후에도 그들은 매달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었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 올 정도로 자서방과는 각별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도하로 발령을 받아 떠난 이후에 그들은 우리를 도하로 초대했었고 우리는 초대에 응했다가 결국 내 휴가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서로 소식이 뜸해졌고 그렇게 벌써 4년이 흘렀다.  


혼자 잠자리에 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들의 전화를 받아서 너무 들뜬 것도 이해가 갔고, 또 그들은 나와도 친분이 있으니 나 역시 옆에 가서 같이 인사도 나누기를 바랐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다시 가서 대화를 나눠볼까? 아니야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강하게 뿌리치고 들어와서 자서방도 화가 나 있을 것 같고 자존심도 상해...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간밤에 웃긴 꿈을 꿨다.

자서방이 나에게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주는 꿈을 꾸었다. 치킨뿐만 아니라 사과도 튀기더니 나에게 건네주며 "이건 프렌치 스타일 애플파이야."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나와보니 자서방이 거실에 없었다. 대신 거실에는 어제 내가 처리하지 않고 뒀던 빨래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부엌문이 닫혀있길래 슬며시 열어보니 안에서는 자서방이 앞치마를 두른 채 프렌치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며 “자기야~" 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이다. 휴대폰에 내 이름을 한국어로 [자기야]라고 저장은 해 두었지만 읽을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연습을 한 것 같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프렌치토스트야! 가서 앉아있으면 내가 갖다 줄게.”

방콕에 살 때는 자서방이 아침에 팬케이크이나 오믈렛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자서방이 아침 식사를 안 먹기 시작한 요즘에는 나 혼자 아침을 먹고 있다. 오래간만에 날 위해 아침 요리를 하고 있는 자서방을 본 순간 속은 이미 버터 녹듯 다 녹았다. 하지만 뚱한 표정은 미처 다 풀지 못한 채 "맛있겠네..." 라고 말한 후 다시 돌아서려는데 자서방이 말했다. 

"뭐 잊은 거 없어? 이리 와 봐~" 

못 이긴 척 돌아섰더니 꼭 끌어안아주며 모닝키스를 퍼붓는 남편. 나의 뚱한 얼굴도 이미 무장해제가 되었다.


"커피랑 줄까?" 

"아니, 우유" 

"꿀도?"

"응 꿀이랑" 


내가 구워서 냉동실에 얼려둔 못난이 빵으로 만들었다.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우유를 넣어서 속이 아주 촉촉하고 맛있었다.




본인이 마실 커피를 들고 내 옆에 와서 앉은 자서방에게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꿈에서는 남편이 후라이드 치킨 만들어 주던데..."

"아 다음에는 후라이드 치킨 만들어 줄게. 안 그래도 요즘에 튀김기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꿈에 또 남편이 사과도 튀기더니 그게 프렌치식 애플파이라고 우겼어."

"그런 음식은 없지만 와이프가 원한다면 그거는 지금 바로 해줄 수 있어." 

"아니, 안 먹을래."

"어제는 미안했어. 와이프가 만든 요리는 오늘 내가 다 먹을 거야. 정말 맛있겠더라." 

"그 친구들은 도하에서 잘 지낸대?" 

그제야 자서방은 어제 도하 친구들의 소식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제 얼마나 말해주고 싶었을까.      


친구는 어느새 고급 호텔 중역이 되어 두 지점이나 셋업을 했고, 당시 호텔 F&B 트레이너였던 와이프는 현재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기다 아기였던 아들은 이미 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해 주었다고...

"코비드 상황이 풀리는 대로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하더라. 집도 넓어서 우리는 비행기표만 끊어서 오면 된대. 내년에 한 일주일 정도 다녀오자. 사막에서 1박도 할 거라고 하길래 우리 와이프가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했어. 어때?" 

"응 이번에는 꼭 가자. 다음에 통화하면 나도 옆에서 같이 인사할게. 그리고 저녁 안 먹을 거면 정확히 전달해 줘야 해. 괜히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놓고 계속 기다렸잖아."  


남편은 한번 더 알겠다며 사과를 했고 우리는 곧 도하 사막에서의 아름다운 1박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수보다 짧을지도 모르는데 다투면서 감정 낭비 시간낭비하지 말자고 꼭꼭 다짐했다. 그리고 후라이드 치킨은 좀 서둘러달라고 말했다. 난 먹는 거에 최고로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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