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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Dec 02. 2020

기꺼이 운전기사가 돼 주시는 시어머니

편하게 장도 보고 또 엄청 웃게도 해 주시는 시어머니

2020년 11월 18일


어제저녁 자서방이 말했다.


" 아무래도 토요일 출근하게   같아. 그래서 이번 주에는  보러 같이  가게 되었어."


" 정말? 힘들겠다.  보는 거야  내가 동네에서 사도 되는데 .  근데 와인이랑 올리브 오일은 마트 가야 되는데... 내가 운전을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엄마한테 와이프  태워다 주라고 할까?"  


말을 마치자마자 자서방은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나를 위해 운전을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다. 시어머니께서도 연세가 있으신데 저렇게 편하게 부탁드려도 되는 건가... 나는 우리 부모님께도 이런 부탁은 못 드릴 것 같다.


잠시 후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마트 가서 살건 없는데 요용 바람도   같이 데려갔다 오면 나도 좋지. 내가 요용한테 직접 메시지 보내마."


곧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아침에 나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말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최고다!!

 

나는 뜨거운 라테를 한잔 만들어서 시어머니의 브리오슈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마다 한 조각씩 잘라먹는데 푹푹 줄어든다.



요즘에는 유난히 안개가 자주 낀다. 우리 남편 출근할 때 조심해서 운전해야 할 텐데...



아침을 다 먹고 났을 때 시어머니께서 벌써 주차장에 도착하셨다고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나는 무스카델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서둘러 장바구니를 챙겨서 내려갔다.  


마트로 향하는 시어머니의 차 안에서 나는 어제 뭘 어떻게 먹었는지, 자서방이 무스카델이랑 얼마나 눈꼴사나운 짓(?)들을 많이 하는지 등등에 대해 시어머니께 들려드리며 수다를 떨었다.





우리가 마트에 들어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살게 뭐뭐 있는지 나에게 먼저 들려주렴. 혹시 나한테 있는 거면  사도 되니까."


"감자, 와인, 올리브 오일, 생크림, 초리소..... [중략] 그리고 감자 볶아 먹는 오리기름이요."


"초리소, 올리브유 그리고 감자는 사지 말거라. 감자는 내일 내가 그헝프레가서 좋은 걸로 사다 주마. 초리소와 올리브유는 집에 있는 걸로 내가 줄게. , 그럼 나는 혼자 둘러보고 있을 테니까 너는 천천히 장보고  끝나면  통로에서 만나기로 하자."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쿨하게 사라지셨다. 혹시라도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나 혼자서 편하게 둘러보라고 배려해 주시는 것이다. (혹은 자서방이 미리 당부한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한참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한 손에 감자를 한팩 들고 계셨다.  


"아무래도 너희가 감자를 많이 먹는  같아서... 우선은 이걸 먹고 있으라고... 이건 내가 계산할 거야."


내가 괜찮다고 거절해도 시어머니께서는 혹시 맛있는 감자인지 궁금하니 먹어보라고 하셨다.


"오늘 저녁에는 너희  먹을 거니?"


"글쎄요. 어머니께서 주신 볼로네제 소스로 파스타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거는 내일 먹는  좋을  같아..."


무슨 말씀이신가 했더니 나중에 계산이 끝나고 났을 때 감자 이외에도 파인애플, 소고기(스테이크 아셰) 그리고 캔에 든 오리고기를 건네주셨다.


" 소고기는 오늘 저녁에 먹어라. 파스타보다  먹기  간단하지? 저쪽에서 신선한 고기로 바로 갈아서 만들어 준거야."


커다란 캔에 든 오리고기는 고구마 퓌레와 층층이 쌓아서 오븐에 구워 먹는 건데 자서방이 어떻게 만드는지 아니까 같이서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운전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요...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뻥 뚫린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리며 시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고속도로가 좋아! 달리고 있으면 기분이 시원해. 안개가 있으니  멋지구나."


기분이 좋으셨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셨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후에 길을 잘못 드시는 바람에 우리는 곧 고속도로로 다시 올라가버렸다.


"...  길로 꺾어야 했는데... 고속도로로 다시 와버렸구나..."


어색하게 웃으시며 말끝을 흐리시더니 다시 힘차게 외치셨다.


"내가 고속도로 좋아한다고 했잖니! 일부러 다시  거라고!"


"! 그러실  같았어요. 그런데요......... 우리 지금 어디로 가나요...?"


자꾸만 낯선 길이 나오고 낯선 강도 나오고 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멀리까지 돌아서 가는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 걱정 말거라. 이길로 가면 시내가 나오지. 시내 가는 김에  바게트 필요하면 빵집에도 들를까?"


"아니요 저희는 괜찮아요. 어제 자서방이  구워놨어요. 호두를 잔뜩 넣었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 실은 우리도 오늘은 바게트를  사도 된단다. 옆집 잘생긴 남자가 글쎄 아침 일찍 빵을 사다 줬지 뭐니. 요즘 자주 그래. 젊은 사람이 아주 친절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마이 달링..."


"정말 친절하네요. 그런데요...  사람은  빵을 자주 사다 주는 걸까요...? 혹시 시부모님    외출이 어려우실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나는 조심스레 머릿속의 의문을 꺼내보았다. 정작 친자식은 연세 드신 어머니께 운전까지 부탁하는데 옆집 남자는 시부모님이 염려스러워서 빵까지 사다 주고 있다니 며느리로서 죄책감이 살짝 들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내 말을 들으시곤 박장대소를 하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무래도 그런가 . 우리가 너무 늙어서 빵집까지   거라고 생각하나 . 그래도 괜찮아. 마이 달링이 찾아오니까 나는 좋아. 우리가 늙었다고 생각해도 !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차 안에서 깔깔 웃었다. 살짝 면목인 없긴 하지만 시어머니의 농담이 너무나 웃겼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까지 태워다 주신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집 거실 창문에서 무스카델의 뒷모습을 보시고는 너무 반가워하셨다.


"...  아가... 집에 가서  대신 꼬옥 안아주렴. 할머니가 전해주는 포옹이라고 말해주고..."


그리고는 손키스를 연신 창문으로 날리셨다. 창밖 세상에 별 흥미가 없는 무스카델의 뒤통수는 야속하게도 돌아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도 손키스를 날려주시고는 쿨하게 차를 돌려서 사라지셨다.


오늘도 고마운 시어머니. 편하게 장도 보고 또 엄청 웃을 수 있게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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