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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Dec 07. 2020

나는 시장 아니고 시댁에서 장 본다.

"장가방은 큰 걸로 가져가길 잘했어." 

2020년 11월 20일


프랑스에 봉쇄령이 내려진 후 시어머니께서는 유난히 더 적적해하시는 것 같다. 1차 봉쇄 때는 우리가 시댁에서 지낼 때라 서로 지루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은 비록 바로 옆에 살고는 있지만 같이 사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 메시지도 더 자주 보내신다. 


오늘도 오전에 시어머니께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미셸이 방금 아주 신선한 바게트를 사 왔는데 혹시 가지러 올래?" 

시아버지께서 사 오시는 바게트는 유난히 맛있다. 단골로 항상 가시는 그 가게의 바게트는 정말 최고다. 나보다는 자서방을 위해서 지금 바로 가지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은 자서방은 나더러 올 때 시댁 수비드 기계 좀 빌려올 수 있냐고 물었다.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는데 갑자기 수비드 기계가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참, 나도 호두 까는 기구 좀 빌려와야겠다! 



외출증을 작성해서 곧바로 집을 나섰다. 길가에 나무들이 점점 앙상해진다. 바닥에는 잎이 점점 더 수북이 쌓이고... 이러다 겨울이 오겠지... 봉쇄로 가을도 제대로 못 느낀 채... 


시댁에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예쁜 토끼털 스웨터를 입고서 웃으며 맞아 주셨다. 항상 밝은 에너지가 넘치시는 우리 시어머니시다. 


이스탄불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날씨가 쌀쌀해져서 더 게을러진 모웬은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오늘도 졸고 있었다. 



부지런한 시아버지께서는 정원에서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계셨다. 그래야 내년에도 미라벨과 레몬들이 더 잘 자랄 수가 있다고 하셨다. 


수비드 기계랑 바게트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시어머니께서는 저녁에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라며 방금 요리하셨다는 야채 오븐 구이도 한통 담아 주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라비아따 소스도 한통 또 주셨다. 아무래도 이건 눈에 띌 때마다 나를 위해 하나씩 사 오시는 것 같다. 잔뜩 챙겨주고 나서도 뭔가 잊어버린 게 없는지 "또 줄게 뭐가 있지..." 하며 혼잣말을 하셨다. 


"과일은 있니? 배좀 더 줄까?" 

"아니요, 전에 주신 오렌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시어머니께서는 지하실로 내려가시더니 버섯과 고기빠떼 한통씩을 건네 주셨다. 



우리 자서방이 굉장히 좋아하는 시어머니표 빠떼-

돼지고기로 만드셨는데 조금씩 나이프로 떠서 바게트에 얹어 먹는다. 내가 이걸 맨 처음 먹었을 때 스팸이랑 비슷하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에 시어머니의 두 눈이 휘번쩍하셨드랬다. 스팸 같은 데다 내 음식 갖다 대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잼이든 소스든 뚜껑에는 보통 만든 연도수를 쓰시는데 이 빠떼병 뚜껑 위에는 100이라고 써져있다. 의미는 바로 요리책 100쪽에 있는 레시피를 보고 하셨다는 뜻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 엄청 웃었는데 오늘은 보자마자 내가 먼저 말했다. 

"100쪽에 있는 레시피군요."

"그렇지. 너도 100쪽 보면 이거 만들 수 있단다! 호호호" 

문제는 어떤 책인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시댁을 나서는데 시어머니께서 택배 박스를 툭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사료를 이번에는 많이 주문했단다."

"고양이 들 거요?"

"그렇지. 우리 미셸은 이거 안 먹으니까..."

"혹시 어머니께서 드시나 싶어서요. 하하 "


실없는 내 농담에 우리는 대문에 서서 깔깔 웃었다. 



장가방을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서방이 말했다. 


"일부러 장가방도 들고 갔던 거야? 와이프 진짜 우리 부모님 댁에서 장 봐오는구나."

"응, 장가방은 큰 걸로 챙겨가길 잘했어."


시댁이 바로 옆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너무 좋은데요!"

오히려 시어머니께서 우리가 귀찮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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