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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an 08. 2021

조촐하지만 더 따뜻했던 크리스마스

시댁에서 나는 가장 많은 선물을 받았다!

202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  


다행히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해 온 남편과 선물 꾸러미를 들고서 시댁으로 향했다. 눈이 아닌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언제나 아늑하게 맞이해 주는 시댁의 거실







우리 시부모님께서는 매년 근교에 있는 유명한 유리공방에 가셔서 유리 장식을 한 가지씩 새로 사 오신다. 매년 다른 모양이 나온다며 모아가는 재미를 즐기신다.       






남편과 시동생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샴페인, 화이트 와인 그리고 레드와인을 골라서 올라왔다. 






특별한 날이니까 소테른 와인!






위에서 거만한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웬. 추바카처럼 털이 점점 늘어나더니 머리 위에도 털이 한 움큼씩 솟아났다.  






우리는 곧 선물 교환식을 가졌다.

돌아가면서 준비한 선물들을 나눠주는데 다들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렀고 내 무릎 위에만 선물들이 자꾸 쌓여만 갔다.





나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가장 궁금했던 자서방의 선물을 가장 먼저 뜯어보았다. 





뭐지... 휴대폰 케이스네...? 심지어 내 폰이랑 안 맞는다...

살짝 당황하는데 옆에서 자서방이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표정을 수습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도 자꾸 빤히 쳐다보고 있길래 왜 저러나 싶었... 

"어? 이건 아이폰 12 케이스네? 난 아이폰 10인데...??"

그제야 자서방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내가 말했잖아. 진짜 선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블로그 하려면 사진도 잘 찍어야 하니까 더 좋은 휴대폰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 

으아... 비싼 선물 사지 말라니까... 사실 우리는 애초에 서로 선물을 하지 말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러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는 뭐가 되니... 



이스탄불은 구석에서 끝까지 구경하고 있었지만 아무 선물도 받지 못했다. 메롱  





이건 스웨덴에서 시동생 부부가 준비해 온 선물이다. 책자에 각 도구별 용도도 친절하게 써져있었다. 

시동생 부부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또 다른 선물로 뚝배기와 수저세트도 있었다. 스웨덴산이라고 우기다가 결국은 아마존에서 주문했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뚝배기와 수저세트를 보니 내가 마치 한국에 와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한국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길래 나중에 내가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젓가락 연습 열심히들 하고 있어요...





시부모님께서는 이불보와 베개커버를 선물해 주셨는데 질이 좋은 브랜드라며 낭시 외곽에 있는 공장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제가 필요한 게 뭔지 역시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니까요!" 

우리가 이사할 때도 대부분의 살림을 알아서 마련해 주신 시어머니시다. 두 분이서 나를 위해 선물을 포장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벅차올랐다.  

시아버지는 무선 애플 키보드에, 시어머니는 수비드 컨테이너에 너무너무 만족해하시며 좋아하셨다.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시어머니께서는 다이닝룸에 간단한 먹거리들을 차리시며 각자 먹고 싶은 대로 접시에 갖다먹으라고 하셨다. 





빵까지 직접 구우셔서 두 가지의 미디 샌드위치를 만드셨다. 훈제연어와 바질 크림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와 닭고기 마요네즈 오이 등이 들어간 샌드위치. 

두 가지 다 너무나 맛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종류의 콜드컷들이 있었다. (접시 별로 사진은 모두 찍지 않았다.)

아, 내가 콜드컷이라고 뭉뚱그렸더니 시어머니께서 각 종류를 설명해 주셨다. 그래도 나에겐 너무 어렵다. 나에게는 아직 모두 정봉이고 콜드컷이다. ;; (아, 한국에서는 잠봉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저 내 귀에는 정봉으로 들릴 뿐...;; )




그리고 모두가 사랑하는 푸아그라-

푸아그라도 두 가지를 준비하셨다. 



하나는 일반 푸아그라 그리고 또 하나는 시어머니께서 트러플 버섯을 넣고 만드신 홈메이드 푸아그라.




그리고 또 식탁 위에는 장식용 송아지가 한 마리 떡하니 서 있었다. 




푸아그라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맛보기로 하고 우선 나머지 종류들을 먼저 담아왔다. 





샴페인과 소테른 와인을 한잔씩 마신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자서방이 새 잔을 가져와서 레드와인을 부어주었다. 





너무 맛있어서 금세 한 접시의 음식을 비운 후에 두 번째로 음식을 가져와서 벽난로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푸아그라도 한 조각씩 가져왔다. 





모두 모두 너무 맛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어느 푸아그라가 더 맛있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두 개 다 맛있다고 대답했다. 두 개다 그냥 서로 다른 매력이 있었다. 기존 푸아그라는 언제 먹어도 맛있고 시어머니의 트러플 푸아그라는 좀 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두 개다 두 조각씩 먹었다.  

시동생의 부인은 (동서라는 말이 도무지 내 입에 붙지를 않는다;) 함께 하지 못했다. 낭시에 살고 있는 그녀의 딸과 오빠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거실 선반에는 귀여운 장식들이 늘었다. 





그리고 모웬은 여전히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 본인의 자리를 양보해 준 모양이다. 




우리가 트러플 푸아그라를 먹고 있을 때 모웬은 발바닥을 핥고 있었을 뿐이다. 

자서방과 나는 틈나는 대로 모웬과 놀아주거나 골려주었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왔을 때 부쉬 드 노엘이 등장했다. 


며칠 전 우리가 시식한 거랑 모양이 좀 달랐는데 시아버지께서는 이거도 똑같은 거라고 하셨다. 아무튼 시식과 상관없이 본인 취향대로 고르신 게 맞는 것 같다. 답정쇼콜라.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케이크 자르는 영광(?)을 주셨다. 내가 한 조각씩 자르면 자서방이 접시를 들고 있다가 받아서 배달을 했다. 왕별은 시아버지께 드렸다. 케이크 역시 너무너무 맛있었다! 배가 불러서 나는 한 조각만 먹었지만 다들 두 조각씩 먹었다. 내가 너무 작게 잘랐나 보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시어머니께서는 아침에 먹으라며 커다란 쿠글로프를 싸주셨다. 저걸 혼자 다 먹으려면 일주일이 넘게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쿠글로프가 좋다!!! 




뭔가 조촐할 것 같았지만 이전 크리스마스와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즐거운 파티였다. 


시동생은 내 프랑스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감탄했고 시부모님과 자서방은 본인들이 더 뿌듯해했다. 


파리에 사는 자서방의 사촌누나인 마리네 가족은 해마다 시댁에 와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에 화상통화로 꽤 오랫동안 아주 시끌벅적하게 통화를 한 덕에 우리 파티의 분위기도 한층 더 밝아졌다. 파티마네 가족은 본인들의 얼굴이 들어간 유쾌한 크리스마스 비디오를 보내주어서 또 한바탕 웃었다. 


우리 부부는 시댁에 갈 때보다 더 묵직해진 선물 보따리를 양손에 가득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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