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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an 17. 2021

남편과 6년 만에 응가 냄새를 텄다.

쥬뗌 보쿠보쿠보쿠

2021년 1월 9일


어제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서방과 티브이를 보고 나서 부엌을 정리하고 있었다. 화장실 신호(?)가 왔지만 나보다 일찍 자러 가는 남편이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은 신비감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먼저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왔다. 

방콕에 살 때는 화장실을 따로 사용한 덕분에 6년간 신비감을 유지해 올 수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욕실과 분리된 좁은 화장실을 둘이서 함께 사용하게 되어 은근히 신경이 쓰이곤 한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온 직후 남편은 그 앞에서 주춤거리며 물었다. 

"나... 들어가도 안전해?" 

음?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확인을 하고 나서 문을 다시 꼭꼭 닫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나 사랑하지?" 

남편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눈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들어가 봐.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자." 

남편은 화장실 문을 열고 잠깐 멈칫했지만 그대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잠시 후 내가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 볼일을 끝낸 남편이 나와서 말했다.

"나 너를 정말 정말 사랑해. 정말 정말!" 

그런데 삿대질은 왜 하는 거니... 눈은 또 왜 그렇게 치켜뜨고... 

남편은 영어로 말한 후 프랑스어로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 

"쥬뗌보쿠보쿠보쿠보쿠보쿠..." 

보쿠보쿠 거리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네... 

그러다가 남편은 우리 근처에서 알짱거리고 있던 고양이 무스카델을 번쩍 들어 안고는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무스카델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화장실 근처로 가면 절대 안 돼..."

"뭐?" 

"응? 나 아무 말 안 했는데?" 

다 들었지만 나도 민망하니 못 들은 걸로...


잠들기 전에도 남편은 말했다. 쥬뗌 보쿠보쿠보쿠라고... 눈을 치켜뜨고 말이다. 





오늘 저녁 나는 정말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었다. 어제 먹다 남은 마르게즈 소시지에 초리소를 잘게 썰어서 볶다가 야채를 듬뿍 넣고 데리야키 소스와 간장을 넣고 볶았는데 내 입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볶음밥이 탄생되었다. 사진 좀 찍어 둘 걸...


자서방은 그걸 먹더니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프랑스에 와서 와이프가 이렇게까지 잘해 줄지는 몰랐어. 프랑스어도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늘었고 요리도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하고. 나는 가끔씩 내가 이렇게 완벽한 와이프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 싶은 생각까지 들어..."

감동스러운 남편의 고백에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정말 운도 좋지. 이런 와이프를 만나다니."

이런 표현을 프랑스어로 배울 때면 나는 꼭꼭 기억해 놨다가 두고두고 잘 써먹는다. 그래서 프랑스어가 빨리 늘었나 보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갑자기 정색하더니 검지 손가락을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아니지, 나는 자격이 있어. 어제 그걸 증명했거든! 쥬뗌보쿠보쿠보쿠보쿠!!"

나는 웃다가 볶음밥이 코로 나올 뻔했다. 






오늘 남편이 볼일을 보고 나왔을 때 화장실 근처를 지나던 나는 코를 틀어막고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쥬뗌 보쿠보쿠..." 

  
그러자 남편은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면서 저기에 들어가서 증명하라고 했다. 


나는 얼른 피했다. 내가 저렇게 심했을 리가 없다고 소리치면서.

이렇게 내 신비주의의 허물은 모두 벗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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