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Mar 21. 2021

시어머니 생신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시어머니의메시지"오늘 내 생일이다."

2021년 3월 13일


토요일 오전. 시어머니께서 놀러오겠다고 메세지를 보내셨다. 


자서방과 무스카델을 보신 지도 꽤 되셨으니 보고 싶으셨나 보다 싶었다.


잠시 후 도착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역시 빈손으로 오지 않으시고 뭔가를 가져오셨다. 




"누아 (호두)는 파티마가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수확한 거 나눠준 거고, 포일 안에 든 거는 내가 만든 감자빠떼란다. 너희가 좋아하길래..."




시어머니와 콜라를 마시는데 어느새 무스카델이 슬금슬금 와서는 시어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멀리멀리 도망가서 근처에도 안 오더니 이제는 꽤 편해졌나 보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너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서방도 커피를 뽑아와서 시어머니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빠는 왜 같이 안 오셨어요?"

"호호호~ 내가 자주 가는 단골 파티세리에서 공짜 갸또 쿠폰을 하나 받았단다. 아침에 너희 아빠더러 쿠폰을 가져가서 갸또를 받아오라고 내가 심부름 보냈지."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시아버지의 성대모사를 하셨고 그걸 들은 자서방은 뒤로 넘어가도록 웃었다. 

"[이... 이걸... 내밀기만 하면 공짜 갸또를 주는 거라고...? 줄 서서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안사고 공짜 갸또만 받아오는 건 좀... 미안하지 않나...] 하면서 안 가려고 하는데 내가 억지로 보냈단다. 어차피 그 집 단골이라서 받은 쿠폰인데 미안할게 뭐 있냐고 했지. 호호~ 진짜 받아오려나 모르겠네."

"아빠가 받아오셨는지 이따가 꼭 알려주세요!"

"어제 아침에는 마리 필립이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간대서 내가 운전을 해 줬단다. 점점 더 기운이 없어져서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내가 달려가서 도와줘야 해. 예전에는 우리가 그녀한테 신세를 많이 졌었는데 이제는 내가 도와줄 수 있게 돼서 좋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이만 가야겠다고 하셨다. 

"너희 아빠가 갸또를 받아왔으려나..."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막상 일어나지는 않으셨다. 대신 빈 컵에 콜라를 따르고 계셨던 것이다. 

눈치 빠른 자서방이 말씀드렸다.

“더 계시 다 가세요. 어차피 바쁜 일도 없으시잖아요.”

"그럴까...? 나 여기 같이 있으면 너희들도 좋니? 나는 좋거든."  

"그럼요, 그리고 무스카델도 좋대요." 

그렇게 믿기엔 무스카델의 표정이 너무 가관이었다. 시어머니 얼굴을 의심스럽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어서 우리를 또 넘어가게 만들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떠나셨는데, 떠나시고 몇 분 후에 나에게 한 문장의 짧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오늘 내 생일이다."

으악.................!!!!!!!!!!!!!!!!!!!!!!!!!! 

농담하시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오늘... 어머니 생신이셔...?" 

나의 이 말 한마디에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자서방은 얼어붙었고 그 표정을 보고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서방은 바로 전화를 드렸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는데 그건 내 기분 탓이었을까...

"엄마,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새 깜빡해 버렸어요. 엄마, 너무 죄송해요. 그리고 생신 축하드려요!"

내가 옆에서 시키는 대로 자서방은 저녁에 아버님과 식사하러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이미 베르나르 아저씨네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하셨다.


베르나르 아저씨도 기억하시는 시어머니의 생신을... 친자식과 며느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서방은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멍청하게 그걸 잊어버리다니... 내가 어떻게 그걸 잊었지... 하아... 잊을게 따로 있지..."

"다시 전화드려서 내일 점심때 식사하러 오시라고 한번 더 말씀드려봐. 내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

자서방은 내가 시키는 대로 다시 전화를 드렸고 흔쾌히 초대에 응하시는 시어머니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휴... 다행이다.  

“내일 제가 맛있는 와인도 준비할게요! 내일 봬요, 엄마!” 

자서방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참고로 자서방이 말한 와인은 시댁 지하실에 있는 거고 시아버지께 오실 때 가져오시라고 부탁드렸다.)


나는 점심 메뉴로 스테이크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자서방이 비빔밥을 적극 추천했다. 스테이크는 자주 해드 실수 있지만 맛있는 비빔밥은 내가 해 드리지 않는 한 못 드신다며... (그리고 분명 본인도 먹고 싶었던 듯...?)

"그래 그럴게. 디저트로는 브라우니를 구워서 크렘 앙글레즈를 얹어서 내야겠다."  

그러고 나서 나는 조용히 혼자서 동네 슈퍼에 다녀왔다. 소고기랑 야채들을 샀고 보라색 오키드 화분도 하나 샀다. 꽃다발을 사려고 했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시어머니께서 오키드를 좋아하셔서 시댁에 이미 오키드가 몇 개 있지만 보라색은 못 본 것 같았다. 



      

보슬비를 맞으며 장바구니와 함께 레옹처럼 화분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슈퍼에 간 줄도 모르고 있던 자서방은 보슬비를 맞은 채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온 나를 보더니 어쩔 줄을 몰라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우리에게 어머니께서 베푸신 게 얼만데... 아마도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해주시는 분인데... 오늘 오셨다가 우리가 생신인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서운하셨겠어. 부족하겠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볼게!

자서방이 꽤 감동한 것 같았다. 

"아참, 어머니께 내일 오실 때 비빔밥 소스 좀 갖다 달라고 해줘." 

"아, 안 그래도 아빠한테 내일 오실 때 와인이랑 샴페인도 좀 갖고 오시라고 말씀드렸어."

"근데 우리 와인잔도 없는데..."

"음... 엄마는 와인보다 샴페인을 더 좋아하시니까 아빠한테 내일 와인잔 대신 샴페인 잔으로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 집에서 아뻬리티프를 하고 여기로 오는 게 낫지 않아?" 

우리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는데 말이다.  

시어머니께서 늦지 않게 알려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뻔했다. 나도 달력에 표시를 해 놓고 내년에는 잊지 않고 먼저 챙겨드려야지. 올해는 처음이니 봐주시기를 바라며... 



저녁때 자서방이 말했다. 

"아빠가 내일 케이크도 가지고 오신대. 디저트도 준비 안 해도 되겠다!" 

이쯤 되면 그냥 장소 제공이 아닌지....?

작가의 이전글 남편과 6년 만에 응가 냄새를 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