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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Mar 21. 2021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한 프랑스 시어머니 생신상

시부모님께서 생일 케이크와 샴페인 그리고 잔까지 다 준비해 오셨다.

2021년 3월 17일


시어머니의 생신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기로 한 후부터 내내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우리 집에 디저트 접시가 없는데...? 디저트 포크는 충분한가...? 와인잔은 어쩌지... 상위에 비빔밥 네 그릇만 덩그러니 올릴 것인가...? 스파클링 워터를 안 사 왔구나, 일요일이라 문 여는 가게가 없는데... 

아침에 시간이 부족할까 봐 전날 저녁에 미리 나물들을 준비했다. 가지, 당근, 쥬키니를 볶았고, 시금치도 무치고, 소고기는 얇게 썰어서 불고기 양념에 재웠다.

그리고 아침에는 때마침 냉장고에 있던 고구마와 쥬키니 호박으로 전을 부쳤다. 그래도 비빔밥만 네 그릇 덩그러니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역시 생일상에는 전이 있어야지...!

전을 부치는데 명절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오이는 돌려 깎기를 해서 채 썰었고, 불고기도 볶고 버섯도 볶아서 모든 재료의 준비를 마쳤다. 



시어머니 생신상인데 이게 정말 다란 말인가, 허허허~ 우리 엄마가 보셨으면 미역국이나 갈비도 없냐고 하셨겠지. 하지만 국 종류는 시부모님께서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으시는 데다 미역국이라면 더 고역이 되셨을 것 같다. 

우리 언니는 디저트로 호떡을 구워서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으란다. 그걸 듣고 내가 말했다. 

“호떡 같은 소리 하네... “


이거 준비하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구먼......

우리 언니는 또 말했다. 전은 자서방한테 부치게 하라고. 하지만 내가 자서방을 어떻게 믿고 맡기냐 말이다......





내가 오전 내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자서방에게는 청소를 맡겼다. 자서방은 청소를 마친 후 테이블 위에 숟가락과 포크 그리고 접시로 세팅을 해 두었다.

비빔밥 외에는 전밖에 없는데... 접시가 너무 크다...





창문을 열고 환기도 시켰다. 

식사 전 샴페인은 소파에서 마실 거라 자서방이 소파 위에 있던 무식이네 집을 치워버렸다. 



"내 집 어쨌냐옹..."



두리번거리며 집을 찾고 있는 무스카델.





무식아, 너네 집 저기 있다. 구석에......





샴페인 안주로는 일전에 시어머니께서 사다주신 스낵 두 봉지를 뜯었다. 


정오가 되자 시부모님께서 도착하셨다. 


먼저 들어오신 시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생일 케이크와 함께 이것저것 들어있는 보따리를 메고 들어오셨다. 뒤 따라 들어오시는 시아버지 역시 다르지 않으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두 분은 초대를 받으신 건데도 먹을 걸 다 챙겨 오셨네요...





이건 생일 케이크-





이건 아뻬리티브- 

완전 모둠안주처럼 다양한 종류가 들어있다.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8분을 구우면 된단다."      





샴페인과 레드와인.





그리고 초콜릿도 한 상자 가지고 오셨다. 




샴페인 잔은 그저 빌려달라고 말씀드렸던 건데 선물이라고 하시며 6개가 들어있는 새 잔으로 한 박스를 갖다 주셨다. 잔이 좀 커서 사용하지 않으셨던 거라고 하셨다. 

두 분은 자식과 며느리에게 생신 축하를 받기 위해 오셨는데 오히려 바리바리 다 싸들고 오셨다. 세상이 이런 일이... 




거실 소파와 팔걸이의자에 다 같이 둘러앉았고, 자서방이 샴페인을 따랐다. 



"이건 소시지, 이건 에스카르고(달팽이), 이건 치즈, 이건 다진 소고기, 이건 키쉬, 그리고 또..." 

시어머니께서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개해 주셨고, 자서방은 안전하게 치즈가 들지 않은 것만 골라먹었다. 근데 대부분 치즈가 들어있어서 다들 치즈가 없는 건 자서방에게 양보했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요게 에스카르고! 마늘향과 촉촉한 올리브유가 만났다! 



치즈를 안 먹는 희한한 프랑스인 자서방은 안전한 소시지를 맨 먼저 집었다.



전날 시아버지께서 쿠폰으로 공짜 갸또를 받아온 체험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크리스마스 때 원래 시어머니께서 미트파이를 원하셔서 시아버지를 가게에 보내셨는데 시아버지께서 이름을 잘못 말씀하셔서 디저트를 사 오셨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잘못된 걸 알았으면 그 자리에서 교환해 달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너희 아빠는 절대로 그런 소리를 못한단다." 

시아버지께서는 멋쩍은 듯 웃으셨다.  


샴페인 병이 비워져 갈 무렵- 오후 1시 반쯤- 나는 부엌에 가서 비빔밥을 준비했다. 



뜨거운 밥 위에 재료를 하나씩 올리고 계란 프라이도 후딱 부쳐서 하나씩 얹었다. 



맨 위에는 깨도 뿌렸다. 이 깨도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거군...



아... 조촐하다...


"식사하세요! 아 따블르!!"  





시판 비빔밥 소스는 내가 한국에서 올 때 시어머니의 부탁으로 사다 드렸던 건데 그냥 고추장은 너무 매우실 것 같아서 몇 개 가져오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다들 너무너무 맛있다고 해 주셨다. 

자서방은 몇 번이나 부엌에 들락거리며, 젓가락도 가져오고, 참기름도 가져왔다. 빠지면 안 되는 것들이라나...... 

전도 인기가 많았다. 고구마 전과 쥬키니 전 둘 다 맛있다고 하셨다. 



와인잔이 없어서 물컵에다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시아버지께서는 항상 본인이 좋아하시는 초콜릿 케이크로 사 오신다. 근데 정말 맛있다.  



내가 한 조각씩 잘라서 접시에 나눠드렸고, 맨 위에 초콜릿도 공평하게 분배해 드렸다. 시아버지께는 초콜릿을 두 개 얹어 드렸고, 마카롱은 내가 먹었다.   



다들 이제 배가 부르고 나니, 무스카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서방이 침실로 가서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무스카델을 안고 나왔고 시어머니께서는 내 비빔밥에 환호하신 것만큼이나 무스카델을 반기셨다. 

케이크를 먹은 후 자서방이 커피를 준비했다. 나를 위해서는 라떼를 만들어 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배가 불러서 그냥 블랙으로 마셨다. 


커피와 함께 시부모님께서 가져오신 초콜릿을 맛보았다. 



시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저는 비빔밥밖에 한 게 없는데요. 두 분이서 다 가져오셨잖아요. 심지어 잔까지요! 저희가 초대한 건데 오히려 초대를 받은 기분이에요. 저희가 감사하지요. 제가 두 분을 만난 건 정말로 행운이에요." 

"프랑스 부모들은 다들 이렇단다. 우리는 자식에게 희생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지. 오늘 나는 정말 정말 행복하단다. 고맙다."

프랑스에서는 부모님들이 다 이렇다고 하시지만 정말 과연 그럴까...? 내가 행운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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