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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Apr 10. 2021

시어머니는 테이블보를 주시며 본인이 더 좋아하셨다.

"아무 때나와서 마음대로 골라가렴."

2021년 3월 19일


나는 시어머니께 봄이 되니 기분 전환을 위해 천으로 된 테이블보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시어머니께서는 집에 많이 있으니 와서 마음대로 골라가라고 하셨다. 

오후에 테이블보를 보러 시댁에 가기전에 나는 냉장고에 남아있던 재료들을 이용해서 크로켓을 만들었다.    



방금 튀겨서 여전히 따끈따끈했다. 

시부모님을 위해 예쁜 것만 담아서 시댁에 가져갔다. 


'빈손으로 왔냐옹...?'


아니야, 오늘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어. 


나를 보자마자 매달리는 모웬과는 달리, 이스탄불은 항상 나를 그저 문 열어 주는 문지기 정도로만 대하는 것 같다. 


시부모님께서는 다이닝룸에 새로 설치한 유리 선반을 장식하기 위해 위층 구석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시아버지께서 매우 골동품같이 보이는 것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계신 걸 보고 내가 말했다. 

"집에 알라딘이 다녀갔나요?" 

그 말을 하며 나는 주전자를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 알라당!" 

알라딘이 프랑스에서는 알라당인가보다. 발음 참 귀엽다. 알라당 발라당...


이건 방향제를 넣는 물건이라고 하셨다. 꽃봉오리처럼 모양을 변신시킬 수 있다. 




내가 감자크로켓을 드렸더니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위해 감자요리를 미리 싸 두셨다며 보여주셨다. 감자와 흰살생선을 으깬 요리인데 위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주셨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고 마지막에는 밀가루를 섞어서 부쳐먹었는데 그것도 너무 맛있었다!) 




내가 녹차 한잔을 다 마셨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테이블보를 보여주신다며 나를 위층으로 데려가셨다. 



"이거 전부다 테이블보란다. 사이즈도 너희 테이블에 딱 맞으니 맘대로 골라보렴~" 

히엑... 엄청 많다고는 하셨지만 저렇게나 많을 줄이야...

뭘 먼저 봐야 할지 몰라 내가 동공을 흔들고 있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능숙한 상인처럼 몇 개를 꺼내서 소개하기 시작하셨다.



담요 위에 차곡차곡 올리시며 계속해서 보여주셨다. 내가 최종적으로 두 개를 고르고 나서도 시어머니께서는 다른 물건들을 계속 꺼내셨다. 

"이건 노엘 때 사용하는 거고.... 이건 여름에 쓰면 색이 참 시원하겠지? 이건 또 바르셀로나에서 산 건데...." 

내가 돈 주고 사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즐거워하실 줄이야. 완전 대박 난 가겟집 사장님처럼 싱글벙글 즐거워하시며 구경시켜주셨다. 

"나는 네가 내 테이블보를 좋아해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렇게 많아도 난 예쁜 걸 보면 또 살 거야. 그런데 나중에 내가 떠나고 자식들이 이것들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너무 슬펐단다."

"서로 갖겠다고 싸울 건데요!"

이런 식의 내 농담을 시어머니께서는 너무 좋아하신다. 

농담이 아닐지도 몰라요...


내가 드린 오키드가 욕실 욕조위에 예쁘게 놓여있었다.


식탁보를 챙기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있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혹시 살게 있으면 드라이브 삼아서 마트에 같이 따라가 주겠다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시아버지께서는 마트에서 와인 세일이 진행 중이라고 추임새를 넣으셨다. 

"음.. 특별히 살건 없는데 그럼 마담 로익이나 사러 갈까요? 와인도 사고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살 게 없다시던 시어머니께서는 카트를 밀며 나를 따라다니셨다. 내가 밀겠다고 했지만 놓아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것저것 사주셨다.   


일전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허니머스터드를 자서방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께서는 그걸 더 사주시겠다며 또 다른 매장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이곳은 지역 농/축산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품질이 좋은 반면 가격은 꽤 비싸 보였다. 


이 조그마한 허니머스터드가 한 병에 5유로가 넘는다. 일반 머스터드에 비해서 많이 비싼데 시어머니께서는 두병을 사주셨다. 괜히 말씀드렸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소 혀를 먹니? 소 혀가 저렇게 큰 거 알고 있었니? 뒤에 Paleron은 나중에 브루기뇽을 만들 때 저걸 사면된단다." 

시어머니께서는 끊임없이 나에게 보여주고 설명을 해 주시며 본인께서 더 즐거워하시는 표정을 지으신다. 



테이블보를 얻으러 갔다가 한 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돈으로 산건 이게 전부다. 마담 로익 두 가지 (플레인, 호두)와 밤맛 요거트- 



그리고 이것들은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것들이다! 

와인은 계산할 때 본인께서 사주신다며 뺏어가신 거고, 대부분은 본인께서 필요하신 듯 구매하신 후에 집 앞에서 나를 내려주실 때 건네주신 것 들이다. 미리 말씀하셨다면 내가 괜찮으니 사지 마시라고 했을 거라는 걸 아시는 것이다.


집에 와서 나는 식탁보를 교체해 보았다. 


노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꾼 거라 큰 변화는 안 느껴지지만 나 혼자 은근히 화사한 기분을 느꼈다. 


기존의 플라스틱 식탁보 보다 왠지 더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천식탁보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이사올 때 시어머니께서 테이블을 보고하기 위해 식탁보 밑에 깔라고 주신 게 있었는데 이제야 기억하고 깔았다. 



시어머니께 사진을 보내드리고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렸다. 

"아무 때나 와서 더 골라가렴." 

"일단 두 가지 가져온 거 먼저 사용하고 나서 나중에 가서 다른 걸로 교체해 올게요!." 

"그래 너 편한 대로 하렴. 나중에 가져오면 다림질도 내가 해 주마." 

불과 며칠 전이 시어머니의 생신이셨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마치 매일매일이 내 생일인 것처럼 대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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