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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Mar 17. 2022

음악엔 도핑 검사가 없어서 다행이야

#1 니체의 시선으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바라보기


음악으로 영화보기 #1
글 조세핀(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출처=네이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스포츠 경기에서는 선수의 일시적인 운동 능력 상승을 돕는 약물을 금지하는 것이 규정이다.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되면 시합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예술계는 조금 다르다. 애초에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도핑 검사 시스템이 없으며, 오히려 환각을 일으키는 금지된 도구들이 상상력의 확장에 보탬이 된다고 보기도 한다. 황금빛 환각을 일으키던 독한 술 압생트를 사랑한 고흐(V. Gogh, 1853-1890)와 그의 작품세계가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현재는 압생트 제조가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예술에서는 이성을 내려놓고 감각의 본능적인 표현에 충실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예로 필자가 라벨(M. Ravel, 1875-1937)의 작품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약이나 술에 완전히 취했다고 상상하고 그 섹슈얼한 느낌을 표현해 봐!”


  술에 취한 상태를 떠올려 보자. 감각의 채도가 흐트러지고 감정의 폭이 넓어지며 의도하지 않은 환각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망각하고 도취 상태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예술의 본 모습이라고 본 철학가가 있다. 바로 니체(F. Nietzsche, 1844-1900)이다. 그는 “(예술가가 예술을 할 수 있으려면) 의식을 잃어 오성이 그의 내면에 전혀 남아있지 않아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예술이 이성적이고 지적이고 구조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며, 정돈이 아닌 혼돈을 드러내는 불확실성이 그 본질이자 매력이라고 본 것이다. 


(출처=네이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2013)에는 이러한 예술가의 도취를 유쾌하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 우선 영화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일종의 음악심리치료사인 마담 프루스트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을 가진 피아니스트 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담 프루스트는 불법으로 직접 재배한 마약성 식물을 사용하여 사이비 최면 치료를 하고 있다. 그녀가 주는 정체모를 홍차를 마시고 마들렌 한 입을 베어물면 환자는 의식을 잃고 기절한다. 그 후 단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어 무의식 속 기억을 대면하고 재구성하도록 유도하여 치료를 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폴의 상상장면

폴은 마담 프루스트의 최면 치료를 통해 망가진 내면을 복구할 뿐 아니라 더욱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거듭난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뻣뻣하고 무미건조한 연주를 해오던 폴은 드디어 색채가 다양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연주를 해내며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이 콩쿠르 무대 장면은 예술가가 살아있는 음악, 즉 시간예술로서의 음악을 무아지경으로 발산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는 연주에 몰입하다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대왕 개구리로 변신하는 환각을 겪는다. 개구리는 그가 과거의 슬픔을 더 이상 가두지 않고 의식 위로 끄집어내어 인정했음을 알려주는 페르소나 캐릭터일 것이다. 


쏟아지는 감정 속에서 폴은 드디어 스스로의 의지로 무대를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케스트라 뒤편에 드럼과 기타, 더블베이스,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상상 속 밴드가 추가되면서 클래식 피아노 콘체르토는 한순간에 퓨전 록 음악으로 전환한다. 물론 이 모든 음악은 폴의 머릿속에서만 광란적으로 일어나는 환청으로, 청중들은 홀로 날뛰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계속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폴을 바라보며 다소 황당해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다시 철학가 니체의 시선으로 이 장면을 살펴보자. “예술가에게는 일종의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봄이, 일종의 습관적 도취가 있어야 한다.” 니체는 승화되고 절제되고 정제된 예술보다는 반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예술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온갖 반이성이 활보하는 환각적인 무대 위에서 폴은 처음으로 유아기적 퇴행을 벗어던지고 실제 나이에 알맞을 법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살면서 제대로 겪어내지 못하고 그저 지나쳐왔을 수십 년의 젊음, 계절, 의미 없던 음악들이 비로소 가치를 찾은 것이다. 그 어떤 타인의 관심과 애정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던 그의 상처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광기 어린 예술행위를 거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만들어냈다. 예술의 불가사의한 힘은 이런 것이다. 오래 해결되지 않던 내면의 고통을, 도덕이나 종교를 뛰어넘는 순수한 공포를, 불가피하거나 불공평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여러 모순들을 순식간에 해체할 수 있는 힘. 니체는 “음악은 가장 나쁜 세계의 실존조차 정당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예술은 예술을 공유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창작자, 청자 모두에게 도취를 통한 자기 망각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출처=네이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음악은 정말이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틀림없다. 존재와 현상을 잊고 무대 위 음악의 시간성에 몰두하는 순간들은 강력한 마약적인 경험으로 쌓이게 된다. 예술은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폴은 결국 음악을 통해 깊었던 상처를 치유하고 그의 곁을 맴돌던 사랑스런 첼리스트와 사랑에 빠진다. 폴이 딸에게 다정한 첫 말을 건네는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의 오랜 실어증 또한 치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예술에서 초월의 영역을 체험했던 사람은 예술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된다. 예술의 현장에서 도핑 검사를 한다면 무언가 알 수 없는 금지된 마약 성분이 검출될 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런 상상과 함께 글을 마친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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