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앙상블리안 Mar 26. 2022

리스트, 공연예술계의 대부가 된 피아니스트

#2 영화 ‘리스토마니아’로 살펴보는 세계 최초의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

음악으로 영화보기 #2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리스토마니아(1975) 포스터

  영화 ‘리스토마니아’(1975)는 화려한 비즈를 주렁주렁 장식한 메트로놈을 비추며 시작한다. 메트로놈은 악기를 연습할 때 정확한 리듬을 맞출 수 있게 도와주는 기계이지만, 영화에서는 사뭇 다르게 사용된다. 메트로놈의 추가 좌우로 움직이며 가속도가 붙으면, 황금빛의 풍성한 장발을 자랑하는 남녀가 그 속도에 맞추어 서로의 몸을 더욱 거칠게 탐닉한다. 강렬한 이 정사 신의 남녀는 프란츠 리스트(F. Liszt, 1811-1886)와 그의 애인이었던 마리 다구(Marie d’Agoult, 1805~1876) 백작 부인으로, 불필요할 만큼 과하게 반짝거리는 이 메트로놈은 음악가 리스트의 화려한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리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 만큼 화려한 음악적 기교를 자랑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연구가 렌츠(W. v. Lenz, 1809-1883)는 “리스트가 나타나자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라는 엄청난 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리스트는 본인이 가진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산하는 방법을 잘 알았던 똑똑한 기획자이자 연출가이기도 했다. 리스트 이전과 이후의 음악 공연계 문화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Theodor Hosemann's 1846 caricature of Franz Liszt

  우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슈퍼스타 아이돌과 팬덤 문화의 시초는 바로 리스트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매력적인 무대 매너를 연출하여 일종의 팬 서비스를 톡톡히 선사하였다. 예를 들어 연주 중엔 긴 머리카락이 꼭 얼굴 위로 자연스레 흩날리게 하였고, 온 몸에 각종 메달과 훈장을 걸치고 연주해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피아노 음향과 섞이기를 유도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관객들의 관심을 시각·청각적 요소를 활용해 극한으로 부풀릴 줄 아는 똑똑한 톱스타의 면모가 엿보인다. 또 어떤 날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반주하는 동안 손가락에 시종일관 시가 담배를 끼우고 거만한 태도를 과시했다. 과잉된 나르시시즘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여주기 식 허세였지만, 그마저도 당시 관객들에게는 사랑스럽게 보였나보다. 지금의 클래식계 공연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리스트가 피우던 담배꽁초, 연주하다 끊어진 피아노 줄, 하물며 그가 마시다 남긴 홍차 가루마저도 기념품으로 챙기려고 몸싸움을 벌였다고 하니 그의 팬 층이 얼마나 광란적이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리스트는 근대적인 피아노 독주 리사이틀 문화의 시초이기도 하다. 당시 1800년대 공연계 관행으로는 피아노가 홀로 독주악기로써 프로그램 전체를 구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리스트는 듀오나 앙상블 없이 피아노 한 대만으로 충분히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채울 수 있었다. 리스트를 통해 피아노는 완전한 독주 악기로 승격된 셈이다. 그는 청중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들 위주의 레퍼토리를 구상했는데, 주로 오페라와 베토벤 교향곡의 편곡 버전을 선호하였다. 피아노의 음량, 음색의 스펙트럼을 최대로 끌어내어 대규모의 관현악적 사운드를 묘사하는 데 능숙했던 것이다.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하면, 대중의 기준에 맞춘 자극적인 선곡 경향에서 현대 공연예술 산업의 시장중심 자본주의적 시스템까지도 예견할 수 있겠다.


영화 리스토마니아 중 한 장면

  나아가 리스트는 능력을 더욱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음악계에 없던 새로운 관습을 도입한다. 바로 악보 없이 무대에 서는 암보 문화이다.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 마저도 “외운답시고 엉망으로 치지 말고 악보를 보고 연주하라.”라고 말한 바 있건만, 리스트는 어떻게 이전에 없던 암보 연주를 공연계에 유행시킨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J. Joachim, 1831-1907)은 “리스트는 악보를 보자마자 처음 연주할 때가 가장 잘 한다.”라는 아리송한 비평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리스트가 악보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첫 초견 연주뿐이었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단 한 번 연주하고도 악보를 쉽게 외워버렸고, 금세 지루해진 그는 두 번째 연주부터는 즉흥적인 변형을 삽입하여 청중들의 환호성을 유도하였다. 주로 단선율의 구간을 옥타브 또는 3도로 변주하였고, 때론 6도 트릴을 사용하여 화려한 묘기를 넣었다고 한다. 이렇듯 뛰어난 암보 능력의 소유자였던 리스트에겐 굳이 악보를 갖고 무대에 올라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리스트에서부터 시작된 암보 문화는 이후 점점 클래식 음악계에 고착되었고, 현재에는 암보 연주가 진지한 음악 행위의 기본 전제로 인식되고 있다. 


"Franz Liszt Fantasizing at the Piano," painting by Josef Danhauser (circa 1840)

  단어 ‘Lisztomania’는 리스트 애호가, 리스트 열광주의자, 또는 리스트 팬클럽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리스트와 바그너(R. Wagner, 1813-1993)의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비현실적인 패러디와 허구가 가득한 코미디이지만, 리스트에 대한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인식들을 내내 포착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리스트만큼 생전에 최고의 인기와 명성을 누린 음악가가 또 있을까. 바그네리안(Wagnerian), 말러리안(Mahlerian) 등 특정 음악가를 추종하는 열렬한 숭배 문화 역시 리스트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진취적인 실험이 가득했던 낭만주의 사조 가운데서도 리스트가 넓혀간 음악예술계의 지평은 새롭고 신선하며 특히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음을 상기하며 글을 마친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조세핀 작가 더 알아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엔 도핑 검사가 없어서 다행이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