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화 ‘아마데우스’로 알아보는 천재미학 이야기
음악으로 영화보기 #3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천재’는 그 희귀성에 비해 우리 생활에서 꽤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감탄과 경외를 담기도 하고, 때론 질투와 부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유명한 문장이 있지만, 사실 역사는 저 뛰어난 1%에 의해 쓰여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과연 천재는 무엇일까? 특히 예술의 영역에는 범접할 수 없는 능력치를 타고난 천재가 종종 등장하며, 이들의 기행은 예술사적 사조를 송두리째 바꾸어놓곤 한다. ‘아마데우스’(1984)는 예술계의 대표 천재인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를 다룬 영화이다. 그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유아적 본능 그대로를 표현하며, 이는 스스로에겐 자유로운 영감이 되지만 주위 사람들에겐 불쾌감 섞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고대 그리스부터 연구되어온 ‘천재미학’은 바로 이런 천재의 고유성에 대한 철학가들의 관심을 축적한 학문이다. 이 글에서는 천재미학을 바탕으로 그들의 성과와 영향력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논의를 참고하며 영화 ‘아마데우스’를 바라보려 한다.
천재미학의 중요한 담론 중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양대 산맥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모차르트는 완벽하게 타고난 신동형 천재로, 베토벤은 영웅적인 발전형 천재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영화는 4살부터 작곡을 시작한 신동 모차르트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는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과 아이디어로 순식간에 빠른 창작을 해내곤 한다. 그는 단숨에 악보에 완성된 곡을 쏟아내고, 이후에 전혀 수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서부터 완벽했기 때문에 고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이러한 면은 천재미학에서 천상, 본질, 나아가 신적인 종교적 세계를 구현하는 선택받은 존재로 형상화되었다. 이를 두고 철학자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천재란 조숙한 재능을 지닌 아이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다.”라고 했다. 특히 모차르트 특유의 명랑함과 절대적 순수성, 그러면서도 작품에 드러나는 심오한 깊이가 핵심으로 연구된 것이다. 반면 베토벤의 창작에는 재능과 더불어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가 더해졌다. 그에겐 자신의 예술관에 대한 확실한 자의식이 있었고, 고통을 삶과 음악으로 발전시켜 승화하려는 강인한 ‘승리의 서사’가 존재했다. 베토벤의 삶은 가정의 불화, 이뤄지지 않은 사랑, 조카와의 애착 문제, 특히 청력의 상실 등 여러 고통이 가득했다. 그의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 유서를 읽어보면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패배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음악을 통해 숭고하게 승리하였다. 이는 철학자 칸트(I. Kant, 1724-1804)가 말한 “규칙을 새롭게 만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천재 유형”에 해당한다. 이렇듯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통해 천재의 두 가지 유형이 정립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음악적 천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평균적 재능을 가진 음악가와 구별되고 규정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1%의 특별한 천재로 만들었을까? 이 역시 천재의 척도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천재미학 연구를 참고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의 가장 큰 척도는 바로 독창성이다. 천재는 기존의 것을 벗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드러내고 나아가 역사 속 흐름을 바꾸는 선구자가 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또 다른 주연이었던 살리에리(A. Salieri, 1750-1825)가 음악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즉 천재가 아닌 가장 큰 이유이다. 그는 보수적 작곡 어법을 가진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개성을 개발해내지 못하고 사조의 흐름을 모방한 예술가들이 많은데, 이들은 생전에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에선 잊히기 마련이다.
독창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영감과 무의식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뮤즈(Muses) 신에서부터 이어져온 영감 개념은, 예술이 신에 의한 산물이라는 오랜 전통적 의식이다. 하지만 종교적 시선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예술의 창작에서 무의식적 영감은 현대에도 여전히 큰 공신일 것이다. 독창성과 영감은 천재를 천재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으로, 합리적인 교육이나 노력과는 구별되는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 비추어지곤 한다.
또한 천재에겐 악마성과 광기가 드러난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는 “예술적 창조성은 발광 상태이며, 악마와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중적으로 광기는 천재의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묘사된 모차르트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그 예시이다. 주로 자유분방하고, 꿈과 모험을 동경하며, 자유로운 연애 관계를 추구하고, 나아가 불안과 고독에서 비롯된 현실 부적응감까지도 예술가의 덕목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또한 천재는 조숙성을 보여준다. 문학가 괴테(J. Goethe, 1749-1832)는 유독 음악계에서 신동, 천재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은 외부에서 오는 큰 자양분이나 삶의 경험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타고난 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신동 철학자·신동 문학가는 없어도 신동 음악가는 존재하는 근거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재에게서 볼 수 있는 요소는 바로 근면성과 집중성이다. 위의 네 가지 척도에 비해 조금은 상투적이고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천재의 창작욕과 맞물렸을 때 가장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아인슈타인(A. Einstein, 1879-1955)은 음악의 위대성을 연구하면서, “위대한 음악가는 창작하고자 하는 의지와 신들린 근면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헨델,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은 이런 신들린 근면성을 가졌지만, 텔레만이나 보케리니는 아니다.”라며 천재 음악가를 걸러내는 비평적 시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난관에 부딪히면, 모차르트가 당신에게 해결책을 준다.” 작곡가 부조니(F. Busoni, 1866-1924)의 남긴 이 말은 모차르트에 대한 헌사이다. 하지만 모차르트 대신에 각자 자신에게 영향을 준 어떤 천재의 이름으로 대체해도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 한때는 왜 나는 천재가 아닌지, 어째서 내가 만들어내는 업적은 이토록 간소한 것인지 고뇌하고 좌절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천재들의 작품을 연주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예술적 합일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음악가로서 이 경험은 때론 전부이자 궁극의 기쁨 그 자체가 되며, 무엇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희숙, 「음악과 천재, 음악적 천재미학의 역사와 담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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