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영화 ‘캣츠’로 살펴보는 뮤지컬의 영화화
음악으로 영화보기 #17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원작과의 비교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관객의 머릿속에는 원작이 최초의 기준으로 확고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라면 줄거리가 효과적으로 압축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마다 다른 범주로 펼쳐졌을 다양한 상상력을 모두 설득할 만큼 압도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가 필요할 것이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경우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대 배경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뮤지컬의 영화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음악이다. 원작의 음악을 똑같이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해석을 입혀야 한다. 원작과 지나치게 멀어지면 뮤지컬의 핵심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서사의 입체감
영화 캣츠(Cats, 2019)는 1981년부터 사랑받아온 뮤지컬 캣츠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 스토리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가고 있지만 각색된 부분도 눈에 띈다. 첫째로 맥캐버티 캐릭터의 확장, 둘째론 ‘Memory’ 이후의 답가가 추가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각색은 모두 서사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사실 뮤지컬 캣츠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평면적인 스토리를 가졌다. 애초에 토마스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의 연작시를 대본으로 하고 있어서 서사가 소설처럼 흥미롭게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다. 사실 뮤지컬의 대규모 서사성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캣츠는 고양이들이 차례대로 자기소개만을 계속 하다가 끝이 나는 싱거운 작품으로 보일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화적 설정들이 추가되었다. 맥캐버티 캐릭터의 마법사 능력은 원작보다 확대되어 그를 확실한 악역으로 고정시켜 주었는데, 덕분에 갈등의 축적과 권선징악이라는 뚜렷한 주제가 더해질 수 있었다. 또한 ‘Memory’의 답가로 원작에는 없는 곡인 ‘Beautiful Ghosts’가 추가되었다. 이 곡 덕분에 그리자벨라가 마지막에 젤리클 고양이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가 조금 더 개연성 있게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철도 고양이 스킴블샹스 장면에서는 실제 철도 길로 배경이 확장되며 뮤지컬에선 볼 수 없었던 넓고 화려한 시야를 보여준다. 편집을 통해 시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분명 뮤지컬영화의 장점이다.
왜 불쾌하지?
서사가 더 입체적으로 바뀐 것은 좋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보다 아쉽고 어색한데 심지어 불쾌감이 든다. 나는 그 가장 큰 이유가 음악, 연출, 캐릭터, 심지어 메이크업까지도 ‘과한 축소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럼텀터거 캐릭터가 유쾌한 진행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사실 영화와 달리 원작의 미스토플리스나 버스토퍼 존스 캐릭터는 직접 노래하지 않기 때문에 럼텀터거의 존재감이 상당히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는 럼텀터거의 비중을 줄이고 여러 주인공들이 동등하게 노래하도록 구성을 바꾸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의 부족한 가창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음색의 얄팍함이 짧은 호흡과 프레이즈를 만나 무너져 내린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베이스와 드럼 중심으로 원작보다 가볍게 연출된 오케스트레이션은 부족한 노래를 제대로 메워주지 못하고 있다.
분장과 메이크업도 꽤나 간소화되었다. 아마도 영화에서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간 시선으로 클로즈업된 표정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뮤지컬보다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캣츠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고양이의 움직임과 표정과 노래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연출된 과장됨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뮤지컬 분장과 달리 영화의 메이크업은 사람의 코 모양을 그대로 노출하였는데, 이는 관객에게 고양이의 탈을 쓴 사람이 네 발로 기는 것 같은 불쾌감을 남겼다. 또한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확실히 늙고 추레한 행색이어야 할 그리자벨라가 비교적 깨끗하고 젊게 묘사되었다. 그리자벨라는 등장시간과 대사는 적은 편이지만, 결말에서 젤리클 고양이로 선택되는 주인공이자 캣츠의 대표곡인 ‘Memory’를 부르는 중심 캐릭터이다. 그리자벨라는 다른 고양이들과 확연히 구별될 만큼 더욱 지저분하게 보였어야 하는데, 엉망이 된 외면은 오히려 그리자벨라의 순수한 내면을 더욱 강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어서 마지막으로 그리자벨라 역 캐스팅의 아쉬움을 풀어보고 싶다. 영화에선 폭발적인 가창력의 가수 겸 배우 제니퍼 허드슨이 그리자벨라 역을 맡았다. 영화 드림걸즈(Dream Girls, 2007)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에너지를 서서히 발전시켜 폭발시키는 구조의 음악에 매우 뛰어나다. 또는 좌절로 시작하였지만 감정의 변화를 거쳐 강렬한 의지로 우뚝 서며 끝나는 노래에도 어울린다. 하지만 ‘Memory’는 그런 곡이 아니다. 그리자벨라는 “If you touch me, you wi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 Look, a new day has begun.”이라고 노래한다. 이 곡은 화산 같은 감정과 가창력으로 울면서 부르는 것보다, 자신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덤덤하게 노래하는 것이 더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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