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몰입력 강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음악으로 영화보기 #16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집착도 사랑일까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 2021)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와 구찌 가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1995년 일어난 마우리치오 구찌 피살 사건은 이후 구찌의 경영에 구찌 가문이 전부 사라지는 계기가 된다. 피렌체에서 설립된 가족 기업이었던 구찌가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그 중심에는 마우리치오의 부인이었던 파트리치아가 있다. 그녀는 파티에서 우연히 마우리치오를 만나고, 통성명 중 그의 성인 ‘구찌’를 듣자마자 표정이 변한다. 당시 구찌는 한물 간 브랜드로 과거의 명성과 그림자에 갇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트리치아에겐 부를 향한 야망이 있었다. 오히려 몰락해가던 브랜드인 구찌는 그녀의 욕심을 더욱 불태웠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마우리치오보다 훨씬 사업 수완이 좋았다. 그녀의 계략들로 마우리치오는 구찌의 최고 경영권자로 우뚝 설 수 있었으며, 구찌 가문의 변호사 도메니코에 대한 그녀의 의심 역시 결국 옳았음이 밝혀진다. 다만 그녀의 신념엔 정직함이 없었다. 파트리치아의 야심은 점점 구찌를 향한 집착을 넘어 탐욕이 되어간다.
사랑은 그저 수단이었을 뿐
이 영화는 대사가 그렇게 많은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흡입력이 굉장히 강하다. 우선 파트리치아의 욕망을 온 몸으로 표현한 레이디 가가의 연기력이 큰 몫을 한다. 극중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의 모습은 점점 부자연스럽게 바뀌는데, 화장과 옷차림도 기괴해지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 몸의 움직임 자체이다. 그녀의 체형은 점점 온갖 짐을 짊어진 듯 구부정해진다. 전남편 마우리치오의 피살을 의뢰하는 장면에서는 웅크린 목은 거의 사라지고 양 어깨가 귀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다. 그녀의 뛰어난 연기는 탐욕을 가까스로 덮어 감추고 있던 마우리치오와의 사랑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그녀의 진실은 얼마나 추악한 것이었는지를 잘 드러낸다.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
여기에 더하여 효과적으로 사용된 배경음악 또한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왔다. 197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의 대표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G. Verdi, 1813-1901), 로시니(G. Rossini, 1792-1868), 푸치니(G. Puccini, 1858-1924)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혼의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의 정열적인 사랑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시작되어 결혼식 장면으로 연결된다. 또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은 파트리치아의 치밀한 거짓말에 놀아나는 구찌 가문의 어리석음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효과를 주었다. 그녀는 알도와 파올로 구찌 부자(父子)를 교묘한 계략으로 완전히 몰락시킨다. 특히 “파스텔 색과 밤색의 천이 더해지면 음악적인 표현이 된다.”며 시대에 맞지 않는 기괴한 디자인을 선보이던 파올로에게 그녀는 연신 거짓 칭찬을 늘어놓는다. 필요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파올로의 감정을 유린한 것이다. 이 때 내내 흐르는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 덕분에 파올로 캐릭터의 부조리와 코미디는 배가 된다. 또한 마우리치오가 살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 평온하게 흐른다. 마우리치오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결혼 후에는 파트리치아의 조종 아래서 불행하게 살았다. 그가 경영 실패로 구찌에서의 지분을 내려놓은 것은 사실 어서 구찌를 탈출하고 싶었을 조급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스키를 타는 평범한 일상을 누구보다도 행복해했다. 사실 그는 구찌 일가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만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너무도 달콤하고 잔잔한 푸치니의 음악은 그의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The Pride of Gucci
그 외에도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피가로의 결혼>과 <마술피리>, 또한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5번 운명 교향곡의 전자음악 편곡 버전 등도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다소 채도가 낮은 회색빛의 카메라 색감과 함께, 장면을 압도하는 사운드의 배경 음악이 주는 긴장감은 영화의 특색을 더욱 빛내준다. 이 영화는 부와 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자, 쥐고 싶은 자, 그리고 놓고 싶은 자의 삼각 구도 속에서 치닫는 갈등을 보여준다. 모든 캐릭터에게 자부심의 기준은 각자 달랐다. 실형을 선고받는 재판 속에서도 “나는 파트리치아 구찌입니다. 레지아니(결혼 이전의 성)가 아닙니다.”라며 오만한 태도를 잃지 않는 그녀에게 인생 최고의 자랑은 ‘구찌’였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사실 어떤 면에서도 옳지는 못했다. 당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긍지, 즉 프라이드가 어떤 것으로 남을 것인지, 혹 이 영화에서의 ‘구찌’와 같은 허상을 쫓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는 시간을 권한다. 영화에서 마우리치오는 이런 말을 던진다.
“케이크 한 조각을 맛보면 전부를 먹으려고 덤빈다. 그것이 바로 구찌이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