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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May 23. 2022

합창음악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사람을 위하여

#6 영화 ‘시스터 액트’로 바라보는 합창음악의 미학

음악으로 영화보기 #6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시스터액트의 주인공 '소피(우피 골드버그 분)'

  영화 ‘시스터 액트’(Sister Act, 1992)를 처음 봤던 것은 중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이 때 경험했던 충격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 날의 음악실 내부의 구조와 냄새 등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당시 음악 선생님이 누구였는지조차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소곤거리며 자유롭게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Oh Maria(Salve Regina)’ 합창이 나오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모두가 당황해했고,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나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몰랐다.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이라며 모두의 위로를 받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지, 그 순간에 대체 왜 눈물이 터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의문과 당혹감이 남았다. 당시엔 너무 어려서 눈물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합창단 공연의 예시(출처=pixabay)

  사실 음악을 감상하다가 눈물이 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흔한 경험이다. 그런데 필자는 눈물이 나는 음악의 범위가 유독 정확하고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바로 인성(人聲)이 모인 다성 합창음악이다. 악곡의 장르는 클래식, 뮤지컬, 종교음악, 동요, 가요 등 어느 것을 가리지 않는다. 필수필요조건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나 자신과 함께 여러 실험을 진행해 왔다. 혹시 사람의 목소리에 쉽게 감동을 받는 취향인 것일까? 그러나 독주 성악곡은 합창음악만큼 강렬하고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 큰 데시벨의 음향에 압도되어서 눈물이 나는 것일까?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음악에도 매번 눈물이 나진 않았다. 혹시 종교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심 때문일까? 하지만 필자의 종교관은 범신론 또는 유신론적 불가지론에 가깝다. 그렇다면 가사의 언어적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필자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베토벤 9번 교향곡의 4악장 합창 부분을 들을 때면 매번 눈물이 난다. 이렇듯 여러 실험 과정을 거치며 깨달은 내용들을 통해 깨달은 일련의 추측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영화 시스터액트 중 한 장면

  필자가 합창음악을 통해 매번 숨길 수 없는 감동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물론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울림 덕분일 것이다. 목소리는 자연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인간의 몸 그 자체를 악기로 사용한다. 인간에게서 나온 울림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어떤 인위적인 소리보다도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진동을 가진 것이 아닐까? 영화 ‘시스터 액트’에서 수녀 합창단의 지휘를 처음 맡게 된 주인공 돌로레스는 이런 말을 한다. “소리를 지르지 말고, 영혼이 깃들 수 있게 해 보세요.” 목소리는 아마도 가장 쉽게 진실 된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악기일 것이다. 

  또한 합창음악을 통해 모든 목소리마다의 각기 다른 삶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또 다른 이유로 꼽고 싶다. 사람의 목소리는 각각의 삶과 이야기를 가진다. 이 모든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인 합창음악은 일반화·보편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굳이 언어로 풀어내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두가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진리에 가까이 가는 서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획득한 이 진리는 미학적 숭고함을 가진다. 그리스의 철학자 롱기누스(C. Longinos, 217-273)는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 올려져, 의기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러운 기쁨의 의미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가 들었던 소리들을 마치 우리 자신이 만들어냈던 것처럼 생각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필자에게 합창은 모든 색깔의 물감을 모아 한 곳으로 섞되, 무자비한 검정색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각자의 무게감과 질감을 살려내는 정교하고 숭고한 작업으로 느껴진다. 다만 모든 색채가 살아있는 개별적 인간으로 대체된 것뿐이다. 이 각각의 이야기들은 어떤 최고의 나무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악기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생명력의 집합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과 완전히 달라져서 음악에 몰두하는 소피(우피 골드버그 분)

  사실, 많은 합창음악이 음악의 후반부로 갈수록 에너지의 폭발을 유도하는 구조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이 영화는 거듭하여 음악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며, 비도덕적인 모든 부류의 인간에게도 음악을 통한 갱생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연출한다. 하지만 영화는 특히 합창음악의 핵심인 밸런스, 즉 ‘조화’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한다. 돌로레스는 혼자 큰 소리를 내는 성량 좋은 소프라노에게 “소리가 정말 좋네요. 하지만 대들보가 무너지겠어요.”라며 서로의 소리를 듣는 방법을 이끌어낸다. 조화는 갈등을 무너뜨리고 따뜻한 마음을 모으게 하는 힘을 가지는데, 음악에서 이 형이상학적 개념의 주체는 항상 사람이다. 특히 합창음악의 감동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필자에게 합창음악이 이토록 짜릿한 이유는 평소에는 발견하기 힘든,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깊숙이 가지고 있을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인간의 본능’을 한데 모아서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따스함이 비록 종종 과도한 연출에 의한 것일지라도 괜찮다. 음악의 힘을 이렇게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내겐 일종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소에 다소 염세적인 인생관을 가진 필자에게도 남아있는 휴머니즘의 아킬레스건이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늘 합창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쏟는 사람이고 싶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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