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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Jun 04. 2022

우주의 음악, 음악의 우주

#7 영화 ‘인터스텔라’와 함께 보는 음악 속 우주의 세계 (1)

음악으로 영화보기 #7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누구나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주의 크기와 본질을 짐작하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내가 물리적으로 두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이 도시, 국가, 대륙, 나아가 지구, 태양계, 우주로 팽창되는 것을 감각하는 순간 한낱 개인일지라도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나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필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아마도 평생 직접 볼 수 없을 거대한 우주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 2014)는 물리학 상대성이론 연구에 근거하여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을 담아냈고, 특히 고리 모양으로 블랙홀의 3차원적 모습을 재현한 영상미가 압도적이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중 한 장면

   그런데 시각적 강렬함 못지않게 인상 깊은 것이 또 있다. 바로 영화의 주제음악들이다. ‘인터스텔라’를 본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최면을 걸 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음의 나열들을 오래 기억하고 되새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음악감독 한스 짐머(Hans Zimmer, 1957-)는 특히 음향적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잘 만드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인터스텔라’의 음악들은 음의 개수를 줄이고 대신 박자를 쪼개어 다양하게 변주시키며 우주의 무한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인 ‘마션’(The Martian, 2015), ‘그래비티’(Gravity, 2013) 등에서도 드러나는 미니멀리즘 기법이다. 나아가 필자는 ‘인터스텔라’의 대표 주제곡인 ‘S.T.A.Y’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4o0qnSeVQQ (인터스텔라 OST - S.T.A.Y(Hans Zimmer)


  ‘S.T.A.Y’는 짧은 음형의 반복을 통해 점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4분의 3박자의 속도감 안에서 꼭대기의 목표음 E(미)를 향해 계속 치고 올라간다. 그러나 A(라), B(시), C(도), D(레)를 거쳐 E에 거의 도달할 즈음이면 다시 거꾸로 A까지 맥없이 하강을 반복한다. 더구나 같은 모티프가 두 번씩 반복되는 것을 보아 한 번에 한 계단씩을 올라가지도 못 하는 힘겨운 발걸음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왼발 하나, 오른발 하나를 번갈아가며 무겁게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Sisyphus)의 신화가 연상된다. 이런 고통스런 반복 끝에 가까스로 E에 근접하더라도 단호한 실패 앞에 다시 A로 돌아와야 하는 운명이 계속된다. 이 E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A-E의 완전5도 음정 간격을 4도, 3도, 2도의 축소를 거쳐 완전1도, 즉 온전한 합일을 향하도록 끊임없이 이동시키는 것일까?


영화 인터스텔라 중 한 장면

  여기서 우리는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수학적 비율로 계산하여 수(數)에서 우주의 본질을 찾으려 한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2-497년경)를 떠올릴 수 있다. 수학의 시작에도, 철학의 시작에도, 심지어 음악의 시작에도 피타고라스가 존재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피타고라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의 수/우주/음악에 대한 모든 애정을 총집합한 일화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음의 진동수에 따른 음정의 조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우주를 가득 채운 행성들의 질서 있는 움직임, 즉 천체의 음악으로 확대하였다. 행성 간 거리의 비율, 즉 Inter(사이)-Stellar(별)에 따라 이들의 움직임이 각기 다른 음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사유를 뒤집으면 음악에서의 조화, 음정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Harmony는 우주를 물리적으로 묘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다시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제곡으로 돌아와서, 끝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최고점의 음정인 E를 들여다보자. E는 인류가 끝까지 정복하지 못하는 어떤 한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모티프 안에서 박자가 점점 긴박하게 나뉘며 같은 음정이 반복되는 것은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하여 두드리는 듯 절박함으로 느껴진다. 이 음악은 직선적인 상승의 움직임만 있을 뿐 어떤 음악적 해결이나 코다가 없이 단절된 프레이즈를 보인다. 우주를 향해 답을 찾아나서야 하는 모험은 E라는 유한함에 갇히지만, 8도의 스케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음역대가 존재하듯이 E-E가 완전1도로 모아지는 순간 새로운 건너편이 열릴 수 있다. 이는 우주에도, 음악에도 존재하는 무한성의 개념을 상징한다.


  이 곡의 마지막 울림은 모든 음정이 한데 섞인 불협화의 E로 끝이 나므로, 완전1도의 합일을 이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음악이 끝나도 미세한 배음으로 남는 E음정을 통해 언젠간 그 때가 올 것임을 기대하게끔 만든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 과학문명의 발전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시각은 이미 음악에도 숨어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몇 개 되지도 않는 음들로 지나친 확대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음악은 수학과 똑같이 자연의 구조를 보는 방법이며, 영혼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영화 속 음악을 자세히 분석하며 서사와의 끈끈한 연계성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가끔 세상은 비언어라는 안경을 통해 볼 때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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