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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Jun 21. 2022

작곡가가 우주를 상상하는 방법

#8 영화 ‘인터스텔라’와 함께 보는 음악 속 우주의 세계 (2)

음악으로 영화보기 #8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정말 좋아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행성을 넘나드는 줄거리도 매혹적이었지만, 특히 오프닝 영상과 주제가에 중독되어 멜로디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흥얼거리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어두운 우주를 배경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기차의 웅장함과, 마이너 조성의 비장한 선율이 멋지게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광활한 우주를 노래하는 곡이라면 응당 이 정도의 무게감이 있어야한다고 마음속에 일종의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을 깊게 공부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 공식은 깨어지기 시작했다. 우주를 표현한 여러 음악 작품들 중에는 꼭 웅장한 음량, 비장한 음색이 아니더라도 우주의 어떤 특성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곡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주를 음악으로 표현한 클래식 작품 두 개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주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라면 역시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 1874-1934)의 ‘The Planets(1916)’이 떠오른다. 홀스트는 총 7개의 곡들에 각각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이미지를 음악화한 것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곡인 ‘해왕성, 신비로운 자(Neptune, the Mystic)’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pp(피아니시모, 매우 여리게)로 연주되는 이 곡은 우주 속에서 부유하듯 떠다니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여성 합창단의 나른한 목소리는 명확한 가사 없이 “아-”하고 모음만을 노래한다. 여기에 하프와 첼레스타의 몽환적인 음향이 더해지니 마치 요가나 명상 음악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어떤 연주 영상을 찾아보아도, 오케스트라와 목소리가 분명 함께 들리지만 무대 위에 합창단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작곡자인 홀스트가 직접 악보에 표기해놓은 지시어를 살펴보자.


<The Chorus is to be placed in an adjoining room, the door of which is to be left open until the last bar of the piece, when it is to be slowly and silently closed.…> 

(합창단은 무대 뒤 대기실에 위치해야 하며, 마지막 마디가 느리고 고요하게 끝날 때까지 출입문이 계속 열려있게끔 한다.…)


  그 비밀은 바로 무대 뒤 대기실에 있다. 여성 합창단은 무대 위에 직접 서지 않고 관객이 볼 수 없는 대기실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합창은 오케스트라 악기들과 완전히 분리된 음향으로 입체적인 공간감을 형성해낸다. 미술작품에서의 가시적 원근감을 귀로 듣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오케스트라, 멀리서 들리는 인성(人聲)의 결합은 마치 우주와 지구의 거리감을 음악으로 듣는 듯 상상력을 자극한다. 필자는 이 곡을 감상할 때마다 합창단의 목소리는 유혹의 마녀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들리고, 전체적인 음향은 피타고라스가 들을 수 있었다던 우주의 음악처럼 들린다. 우주 어딘가에서 보내오는 신비한 신호가 있다면 이 음악과 흡사하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조지 크럼(George Crumb, 1929-2022)의 작품 ‘Makrokosmos(1973)’을 소개한다. ‘마크로코스모스’는 한국어로 ‘장대한 대우주’라는 뜻으로, 작품 곳곳에서 종교, 숫자, 도형 기보 등의 상징성을 찾아볼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마크로코스모스 1권의 12번 작품인 ‘Spiral Galaxy(나선 은하)’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곡의 악보는 이렇게 해괴하게 생겼다. 제목 그대로 나선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오선지가 휘어져 있다. 사실 연주자의 입장에선 최악의 가독성을 보여주지만,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나선형은 악보 그 자체로도 시각적으로 신비하다. 우주를 바라보는 작곡가의 시선을 청각 뿐 아니라 시각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곡은 음향이 분명하게 대조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피아노 내부의 현을 긁으면서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듯 육중한 무게감의 모티브와, 그 움직임이 멈추면 제자리에서 보글거리며 끓는 물처럼 소곤거리는 모티브가 이어진다. ‘Aquarian(물병자리)’의 별자리 부제와도 어울리며 얼핏 작곡가 라벨(M. Ravel, 1875-1937)의 인상주의 음악이 연상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 곡이 미지의 블랙홀을 상상한 것으로 느껴진다. 적막 속에서 배음을 울리며 생겨나는 날카로운 음향은 블랙홀 속의 고요함이다. 악보의 첫 마디에 쓰여 있는 ‘Vast, Lonely, Timeless’, 즉 ‘광활하고 고독하며 영원하게’ 연주하라는 작곡가의 지시어에서도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암흑의 구체를 상상할 수 있다. 작곡가 크럼의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여러 우주적 상징성은 특히 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몫을 하고 있다. 


  우주의 무한한 지평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아마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의 영감을 찾고 있을 것이다. 지난 글에선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 2014)를 매개하여 절제된 미니멀리즘으로 오히려 무한성의 본질 자체를 더욱 진하게 함축해낸 한스 짐머(Hans Zimmer, 1957-)의 음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무대를 분리하여 소리의 원근감으로 공간으로서의 우주를 표현한 홀스트의 음악, 또한 악보의 시각적 이미지와 독특한 음향 주법으로 우주의 상징성을 담아낸 크럼의 음악을 소개했다. 아마도 인류의 모든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품고 있을 우주의 세계는, 끝없이 팽창하고 창조되는 무한한 음악의 세계와 닮았다. 그래서 과학자 아인슈타인(A. Einstein, 1879-1955)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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