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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Jul 10. 2022

어른도 설탕이 필요해

#9 영화 ‘메리 포핀스’로 바라보는 음악 속 가사의 힘

음악으로 영화보기 #9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메리포핀스(1964) 포스터

   마침 초여름의 푸른 빗줄기가 땅을 적시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영화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1964)의 주인공 메리 포핀스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검정 우산을 타고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상상을 한다. 1964년 작품인 ‘메리 포핀스’는 이젠 고전으로 불릴 만큼 오래된 뮤지컬 영화이다. 그러나 필자는 21세기에 만들어진 세련되고 화려한 다른 뮤지컬 영화들보다 ‘메리 포핀스’를 가장 좋아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다소 촌스럽지만 무척 사랑스럽다. 메리 포핀스의 의도대로 우왕좌왕 이끌려가는 인물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은 따뜻한 웃음을 짓게 한다. 또 평범한 일상들을 여러 색의 셀로판지로 덮어 바라보는 듯 천진난만하고 특별한 시선도 좋다. 투명하고 바스락거리는 상상력은 딱 한 겹으로도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충분히 엉뚱한 안경이 된다. 그리고 장면들을 더욱 빛내는 완벽한 음악도 좋다. 디즈니의 전속 애니메이션 작곡가인 셔먼 형제(Robert Sherman, Richard Sherman)의 음악에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특히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메리포핀스 스틸컷(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음악 중에는 ‘Chim Chim Cher-ee’,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와 같이 잘 만들어진 선율로 한 번 듣고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곡들이 있다. 반면 시적이고 동화적인 가사에서 더욱 위로를 받는 음악도 있다. 문장을 찬찬히 음미하며 음악과 함께 여러 번 영화 속 장면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수록곡 ‘A spoonful of Sugar’를 예시로 들어보고자 한다. 영화의 주인공 제인과 마이클 남매는 매일매일 똑같이 해야 하는 방 청소가 지겹고 재미없다. 하늘에서 날아온 유모 메리 포핀스는 마법의 힘을 살짝 곁들여 아이들이 청소를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때 쓰인 음악이 ‘A spoonful of Sugar’이다. 손가락 스냅 한 번, 박수 한 번의 작은 마법이 어질러진 방을 함께 정리해준다. 이 곡의 가사를 일부 살펴보자. 


In every job that must be done 꼭 해야만 하는 일들에도

There is an element of fun 재미있는 점이 하나쯤은 있어

You find the fun and snap! 그 재미를 찾아서 손가락을 튕겨봐!

The job’s a game 그럼 그 일은 게임이 될 거야

A robin feathering his nest 둥지를 꾸미고 있는 울새는

Has very little time to rest while gathering his bits of twine and twig 풀과 가지 조각을 모으느라 쉴 틈이 거의 없지

Though quite intent in his pursuit 울새는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두하지만

He has a merry tune to toot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기분을 유지해

He knows a song will move the job along 울새는 노래 덕분에 일이 놀이가 되는 것을 알거든

A spoonful of sugar helps the medicine go down, in a most delightful way 설탕 한 스푼은 약을 삼키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정말 사랑스러운 방법이지


영화 메리포핀스 스틸컷(출처=네이버 영화)

  필자는 사실 이 곡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바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상의 삶과 책임감에 찌든 모든 어른들에게 자신만의 설탕 한 스푼을 찾아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설탕 한 스푼은 아이에겐 쓴 약, 어른에겐 쓰디쓴 삶을 잘 삼켜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상 본능을 제어하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다. 적절한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유의 박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일상적 삶의 영위를 위한 직업 활동에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예를 들어 비좁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길에 오른다거나,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밤늦은 연습을 강행한다거나, 부족한 식사 시간에 쫓겨 마시듯 먹어치우는 김밥 같은 고된 시간들 말이다. 이러한 고됨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들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다. 그래서 유독 체력이 버거운 날에는 마법 같은 비법, 메리 포핀스가 떠먹여주는 설탕 한 스푼이 절실해진다. 

  그 때문에 ‘A spoonful of Sugar’의 후렴구 문장 “A spoonful of sugar helps the medicine go down, in a most delightful way”에 숨겨진 음악적 아이러니가 위로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가사가 ‘down’일 때 오히려 음정은 6도 도약하며 점프하는 부분이다.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가사와 음정을 반대로 설정해놓은 것인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어는 ‘down’일지라도 음정을 ‘up’시켜 음악의 주제인 ‘설탕의 힘’을 역설로 내포한 것이다. 언어와 음정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들이다. 이 둘이 서로 반대를 품고 만나는 것은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설은 아니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매순간 쌓여가는 고통을 참아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어른은 안다. 쓴 약을 삼킴으로서 내 삶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역설이다. 역설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른은 삶을 인내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메리포핀스 스틸컷(출처=네이버 영화)

  필자에게 현재 가장 강력한 설탕은 역시 음악인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서 피로했던 날은 비언어의 음악, 주로 클래식 기악작품이나 재즈를 듣는다. 홀로 외로운 연습시간을 오래 보낸 날이라면 에너지가 듬뿍 담긴 뮤지컬, 팝송, 가요 음악을 고른다.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밤에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음악의 세계는 각기 다른 색과 결정체로 빛나는 모래밭처럼, 계속 파고들어가도 끝이 없는 설탕의 바다이다. 물론 설탕 한 스푼은 가족, 친구, 여행, 독서, 커피, 게임, 요리 등등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나만의 설탕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노래하며 둥지를 꾸미는 데 몰두하는 울새처럼 달콤한 음악의 힘을 빌려보기를 권유하며 글을 마친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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