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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May 07. 2022

차이코프스키와 디즈니의 콜라보레이션이 궁금하다면

#5 집에서 보는 발레 공연,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음악으로 영화보기 #5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화려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클래식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차이코프스키(P. Tchaikovsky, 1840-1893)의 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의 3대 발레 작품을 작곡한 발레곡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Op.71)은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쏟아지는 눈, 요정과 인형 캐릭터가 가득한 이야기 덕분에 더욱 성탄절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또한 줄거리가 시작되는 시점이 크리스마스이브, 끝나는 시점이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이어서 12월 24일 저녁에 공연을 관람한다면 동화처럼 마법 같은 시공간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 (출처: 연합뉴스)

  필자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번갈아가며 매해 연말에 보러 가는 오랜 습관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 자신에게 약속하는 연례적인 선물인 셈이다. 하지만 공연장에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시국에 결국 매년 지켜오던 이 약속도 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항상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와 함께하던 관습을 어떻게든 이어보고자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바로 디즈니의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The Nutcracker and the Four Realms, 2018)이다.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컨셉 아트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그림자로 비춘다. 이는 디즈니의 전설적인 고전 ‘판타지아’(Fantasia, 1940)의 오마주일 것이다. 그런데 지휘자의 실루엣이 어쩐지 많이 익숙하다. 오케스트라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매우 곱슬곱슬하게 부푼 머리카락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바로 구스타보 두다멜(G. Dudamel, 1981-)이다. 사실 필자는 이 영화의 음악 제작에 두다멜 이외에도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 1982-)과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A. Bocelli, 1958-)가 참여했다는 것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두다멜의 실루엣에 이 영화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우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단순히 배경 연출만을 위해 대강 녹음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섰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스타 음악가들을 모이게 한 것은 역시 디즈니의 막강한 자본력 덕분일 것이다. 음악가뿐이 아니다.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첫 흑인 여성 수석무용수인 미스티 코플랜드(M. Copeland, 1982-)가 영화의 중간과 엔딩 크레딧에 등장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황홀한 퍼포먼스는 화려하고 동화적인 연출, 독립되고 강조된 조명, 다양한 각도의 영화적 미장센과 함께 마치 무대 바로 앞 관객석 1열에서 가까이 발레를 감상하는 듯 밀착된 시각적 만족도를 선사한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첫 흑인 여성 수석무용수인 미스티 코플랜드(M. Copeland, 1982-)


  하지만 예술가들의 파격적이고 위풍당당한 등장에 비해,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자체는 큰 드러남 없이 부피를 숨기는 편이다. 발레 원작의 2부에선 스페인, 아라비아, 중국, 러시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인형들이 각자의 개인기와 풍성한 춤을 자랑한다. 하지만 영화는 서사의 각색을 위해 나라별 음악과 춤이 대거 생략되었다. 영화의 줄거리가 기존의 발레 작품의 내용과 크게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원작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일종의 과감한 선택과 가감을 더한 것인데, 사실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을 사랑하고 기대한 필자에게는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원작에 없던 각색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만큼, 또한 두다멜과 랑랑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참여시킨 만큼 차라리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도 새로운 편곡을 더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차이코프스키가 애용했던 악기인 첼레스타(Celesta)를 사용한 새로운 음향 효과의 악곡을 추가하는 것이다. 첼레스타는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사탕요정의 춤’에 사용된 건반악기로 피아노와 글로켄슈필을 합친 듯 신비롭고 몽환적인 음색을 가졌다.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라이벌 작곡가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N. Rimsky-Korsakov, 1844-1908)의 손에 이 악기가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비밀리에 몰래 수입해올 정도로 첼레스타의 소리를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클라라와 호두까기 병정이 거대한 생쥐 대왕을 맞닥뜨리는 등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에 아마도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특징을 살린 변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원작 음악의 정체성이 더 부각되고 표현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스틸 이미지 (출처: 네이버 뉴스)

   외출이 어려운 요즈음과 같은 상황엔 발레, 뮤지컬, 오페라 등 무대예술 작품을 영화화 하는 제작 소식들이 참 반갑다. 물론 예술작품의 재생산이 매번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각각의 매력과 장단점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를 발견한다. 예를 들어 공연장에서 원작을 관람하면 시간예술을 무대 위 본래의 모습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반면, 원작을 각색한 영화를 감상할 때는 편집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내 집, 내 방에서 편안하고 쉽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시대에 어울리는 큰 장점이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작품의 뻔한 시각화와 답습에 머무르지 않고, 실험적인 시도와 도전 정신으로 재탄생된 영화가 더욱 다양해지기를 바란다.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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