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혀 있는 관계의 흔적을 솎아내고 건강한 연결을 키워가려면
해당 내용은 다음의 카드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 삼박자, 얼마나 맞추고 있나요?>
오래전 국제학회에서 열린 심리치료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워크숍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자 선생님은 각국에서 모인 서른 명 남짓한 참여자들에게 빈 명찰을 나누어 주며 최근에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리저리 거닐다 누군가를 마주치면 말없이 명찰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잠시 머물러 보라고 했지요.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 덕분이었는지, 다들 내면 깊은 곳의 괴로움을 진솔하게 나누었습니다. 명찰에 적힌 내용들은 놀랍게도 모두 관계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까 두렵고, 지금 속해 있는 집단에 자신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받았던 해묵은 상처가 여전히 욱신거린다는 각자의 이야기가 고요하게 공간을 채워가던 순간은 지금도 강렬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워크숍이 환자의 대인관계를 비롯한 삶 속 상호작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심리치료를 탐구하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인상 깊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의 생존에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빈약하거나 몹시 제한된 사회관계는 흡연과 맞먹는 정도로 사망률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인간이 가진 신경계 자산의 상당 부분도 갓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적 신호에 조절하고 사회기능을 학습하도록 섬세하게 짜여 있고요. 우리가 보이는 모든 행동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난 상호작용으로부터 다듬어지고 굳어진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치료를 찾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관계에 대한 사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합니다. 관계에서 받은 ‘내상’이 치료를 결심한 계기일 때도 있고, 꽤 긴 시간 치료에서 자신의 ‘문제’를 탐색하다 그 문제가 대인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대개 저와의 관계, 즉 치료관계라고 불리는 치료자와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맺어 온 관계의 특성이 투영될 때 뚜렷하게 드러나곤 하지요. 물론 겉보기에는 꽤 다르지만, 행동이 담고 있는 기능은 진료실 안이든 밖이든 신기할 만큼 닮아 있습니다.
읽다 보니 과연 내 대인관계는 어떨지 궁금해지시지 않나요? 심리학 이론과 치료 기법에 따라 대인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오늘은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을 둔 기능분석정신치료에서 제시하는 ‘인식-용기-사랑’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인식이란 현재 순간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둘 사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 덕분에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기보다 타이밍에 맞추어 행동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요. 용기는 상처받을지도 모를 불확실성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진실되게 표현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효율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힘을 일컫습니다. 누군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도,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낼 때도, 도움이나 피드백을 받고자 할 때도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용기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입니다. 이해와 공감을 전할 수도 있고, 그에 발맞추어 자신의 진실함을 표현할 수도 있고, 사과나 약속을 할 수도, 필요하다면 침착하게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말 대신 몸짓이나 행동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요. 만약 용기 있는 행동을 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바라던 반응을 얻지 못했다면, 이 사랑을 자신에게 직접 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자기자비를 떠올려 보세요).
이들 세 가지 특성 간 균형이 흔들릴 때 관계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인식만 있고 용기와 사랑이 없다면 무기력함이나 공허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용기만 있고 인식과 사랑이 없다면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무모하게 행동하다 멀어지게 되지요. 사랑만 있고 용기와 인식이 없다면 갈등 상황에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잘해주다 지쳐버리곤 합니다. 우리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겪어보았을 상황들이지요. 그저 다음번엔 더 잘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오래 굳어진 방식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에서, 치료자와 나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환자분께 이 질문을 던지면 으레 ‘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이건 치료인데 여기서 설마 그럴 일은 없겠죠’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심리치료 또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은근하고 미묘하게라도 내가 지금껏 반복해서 겪어 온 대인관계 속 어려움이 치료관계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내 마음을 돌보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마저 이런 일이 생기면 속상함은 몇 배로 커지고, 결국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와 동시에 치료에서는 이런 순간들이 앞서 말씀드렸던 새롭고 건강한 관계 맺는 방식을 시도해 볼 좋은 재료가 됩니다. 지금 나와 치료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차리고(인식),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나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표현해 보고(용기), 치료자의 안내에 따라 자신 또한 이 상호작용에서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사랑) 과정이 일어나는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특히 자기 자신의 느낌이나 필요를 자해나 자살 시도 같은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아도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지 않을 수 있는 첫 순간이 움틀 수도 있습니다. 그 새로운 방식을 삶 속에 옮겨 심어 보는 것이 다음 단계이지요. 치료관계를 통해 대인관계 전반을 변화시켜 가는 이 작업은 마치 무성하고 퇴색한 덩굴을 솎아내고 자신만의 숲을 오롯이 가꾸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예전에 비해 심리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우리 삶에서 ‘치료자’라는 호칭을 가진 사람을 만날 일도, 그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도 더 많아졌습니다. 치료자와 만남을 위로와 힘이 되는 짤막한 경험으로 매듭을 짓든, 함께 급한 불을 끈 다음 계절마다 한 번씩 안부를 주고받으며 이어가든, 조금 더 촘촘히 만나며 주된 배움의 장으로 꾸려가든,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함께 걷는 그 시간이, 심지어 조금은 불편한 긴장과 갈등의 순간마저도 당신이 얽혀 있던 오랜 관계의 흔적을 솎아내고 건강한 연결을 키워가는 자양분이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의현 대한명상의학회 국제이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얽혀 있는 '관계' 때문에 괴로운가요? 건강한 회복 원한다면…]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