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내용은 다음의 카드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와 나의 슬픔>
나는 문득 저 골짜기 아래로 뛰어내려
내 고통과 슬픔을 물살에 휩쓸리게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괴테가 1774년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실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였고, 그 심정이 잘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살아가는 것이 힘든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한 줄기의 빛과 같은 달콤한 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이 발표된 이후 유럽 전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하였고,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베르테르 현상’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말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죽으면 편해질 것 같아요.
연예인 A 씨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현대에도 베르테르 현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유명 인물의 자살 사건이 보도된 후,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유명인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 1개월 이내에 자살률이 평균 25.9% 증가하였습니다. 2023년 12월 유명인의 자살 이후 2달의 기간 동안 자살이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의 여배우의 자살 보도부터, 20대 유명인의 연이은 자살, 최근의 유명 배우의 자살까지 여전히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명인의 자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출은 우리 사회에서 직접, 간접적으로 자살을 높이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서는 예전과 다르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가 빠르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유명인의 자살은 사회의 자살률에 크고 빠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 자살 사건을 구체적으로 보도할수록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언론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하며, 윤리적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살의 구체적인 방법을 묘사하지 않고, 대신 자살 예방 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베르테르’와 같이 실제 인물이 아닌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매체 속 인물의 자살 역시 실제 사회에서의 자살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때, 자살을 낭만적이거나 불가피한 선택으로 묘사하는 경우,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이를 모방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유명인이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낍니다. 특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와 유사한 상황에 부닥친 유명인을 보며 더욱 깊이 감정이입을 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사회적 전염 효과까지 더해지면 자살이 일종의 해결책인 것처럼 여겨지고, 그 결과 실제 사회에서의 자살이 증가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고립과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유명인의 자살 사건은 ‘저렇게 빛나던 사람도 자살했는데, 나에게는 도저히 희망이 없어.’라며 유명인보다도 더 못한 자신의 상황과 연결 짓고 절망감과 무력감이 커지며 자살을 결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에 대한 뉴스를 접하였을 때, 나의 마음을 내가 스스로 보호할 방법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가 이때까지 외면하고 피하고 있었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마주하게 하며,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뉴스를 접하였을 때의 감정을 억누르고 부정하기보다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슬픔, 충격, 불안, 혼란 등의 다양한 감정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고 충분히 느끼며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해당 뉴스에 대해서 계속 찾아보기보다는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을 권합니다. 친구나 가족과 같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명상, 운동, 취미활동 등과 같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자살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때는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까운 정신건강 전문가나 상담 센터에 연락하거나, 자살 예방을 위한 핫라인이나 지원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자살 예방 핫라인(1393)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 등에 연락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알아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자살,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하지 마라.’라고 말을 할 자격이 없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잘 알려진 누군가의 자살에 대한 선택이 어쩌면 우리에게도 자살에 대한 경계를 허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를 돌보는 과정에서 나를 존중하고, 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다운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유명인'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