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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상처를 받은 분들께:
회복을 위한 몇가지 전략

삶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깊은 상처를 입는 일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억울함과 분노, 무력감, 심지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가장 걱정되는 점은 갈등이나 사건을 해결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더 고립되거나 상처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 내 대인관계 갈등 해결 과정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법 절차나 기관 처리 과정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장기화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피해자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겪게 되며, 갈등 해결에만 몰두하다 보면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고, 가해자 및 사건으로 인한 직접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고 동료, 회사,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이차적인 합병증이 바로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삶의 균형을 잃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건이 규명되고 적법한 절차를 따라 사후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피해 입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넘어서 이 과정의 시간을 잘 넘기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힘드시겠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한 일상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사건 처리가 모두 끝나야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대체로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 힘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일상생활 속 가치 있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더 잘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또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은 결국 직장은 다시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것입니다. 직장 내 대인관계 갈등으로 큰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건이 잘 해결되어 다시 직장에 복귀하여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 이외의 다른 동료들까지 미워하거나 불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나를 온전히 위해주거나 지지해주지 않는 쪽으로 기관의 처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을, 동료 개인이 나에게 가지는 특별한 감정 때문이 아님을, 그들이 가해자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가해자와 한 팀으로 묶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모든 직원과 관리자는 기관 내 규율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관리자들에게는 이 사건에 대해 좌지우지할 만한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기관은 법적 결과를 기다리고 처분을 내리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기다리는 시간이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괴롭고 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기관에서 사건을 처리할 때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는 계속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힘든 상황에서도 미움과 불신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부정적으로 흘러가려고만 하는 생각들을 잘 지켜보아야 합니다. 이 또한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입니다.


직장 내 폭력이나 괴롭힘의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가해자에게 벌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가해자가 유죄가 나온 뒤에도 이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처벌도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손실을 온전히 보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노와 원망에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벌을 주려 애쓰고 미워하는 일이 매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해왔던 것과는 매우 동떨어진 행동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 쪽으로, 혹은 그다지 상대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적어도 원망하고 피해를 주고자 하는 쪽으로 대인관계를 해오진 않았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미워하고 벌주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려 하니 익숙하지도 않고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소진되며, 이런 마음을 가진 나 자신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워하며 저주하면서도 스스로가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도 참 힘든 일임을 느낍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며 가해자를 원망하거나 벌을 줄 방법에 대해 몰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원래의 내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나를 위로해 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고통이 있었음에도 내가 원래 계획했던 행복하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에너지를 분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으신 분들과 오랜 기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결과가 나온 끝에, 혹은 소중한 일상과 사람들과 연결된 뒤, 결국에는 조심스럽게 용서라는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사실 용서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잊어버리거나 겪었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버립니다. 용서라는 행동을 하기 전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만약 그들을 용서를 한다 해도 가해자는 여전히 유죄이고, 징계절차나 법적절차는 여전히 진행될 것입니다. 용서로 인해 오직 변하는 것은 당신이 치유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고통스러운 과거를 놓아주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의 상처를 붙잡고 가해자들의 불행을 바라고 있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마음과 성장을 해치고 독이 될 뿐, 정작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분은 이제 내 손을 떠나 다 넘겨진 상태로 그 결과는 내가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미워한다고 해도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종 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했던 행동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한 행동방식은 결국 가해자의 대인관계 속에서 부메랑처럼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도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셨다면 그 이후에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놓아주고 내 인생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없애고 그 일과 상관없이 다시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전략은 어떠한지요? 마음이 그렇게 따라오는 것이 무척 힘들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되신다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늘 해오던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위기 극복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잘못은 전혀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유죄입니다.)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 임을 믿습니다. 이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넘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회복하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도 포함합니다.


윤지애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직장에서 받은 상처… '이 감정'에 휩싸이면 회복 더뎌져]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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